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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의 운하(굴포천)는 고려 때부터 시작됐다

[강경구 前시장의 우리고장 이야기<16>- 고촌읍 전호리]

<동국여지지(東國與地志), 대동지지>의 산수편에서 굴포에 대해 설명하기를‘고려때 최이가 도랑을 파서 바다와 통하게 하려 했으나 중지했고 본조의 김안로가 다시 시작했으나 역시 이루지 못했다’고 돼있다. 예전의 대량운송의 수단은 조운(漕運)이었다. 특히 조정의 재정은 각지방에서 세곡(稅穀)으로 충당했거니와 조선시대 경상도 10만석, 전라도 10만석의 세곡을 수송해 경창(京倉)에 보관해 1년의 재정으로 썼던 것이다. 조운은 30척(1척에 800~ 1000석)을 선단으로 편성해 서해를 거쳐 강화해협인 손돌목을 지나 한강을 거슬러 삼개(마포나루)로 들어갔다. 이러한 수송과정에서 태조 4년(1395)에 16척, 태종 3년(1403) 30척, 수부(水夫) 1천여명, 태종14년(1414) 66척과 20여명의 수부, 세조원년(1455) 54척이 침몰하고 인명의 손실을 당하는 해난사고가 3노트의 빠른 물살과 물결이 소용돌이 치는 손돌목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매년 일어나는 해난사고를 없애고 수송거리를 단축시키고자 굴포운하(掘浦運河)가 계획됐으나 인천 원통(圓通)고개의 높이와 암벽 앞에서 좌절되고 말았다. 그 후 이명박 대통령 당시(2012. 5.25) 경인아라뱃길을 완공 개통하게 됐다.


이 마을에는 굴포천 운하에 대한 짧은 전설이 전해온다. 김자점(金自點)이 역적모의를 할 때 이 운하를 하루저녁에 팠는데 부평 원통고개를 못 뚫고 발각됐다.
운하를 완성하지 못하고 발각돼 원통하다고 탄식했다 해 원통고개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 고대유물이 출토된 마을= 이 마을은 주산(主山)인 전호산 앞자락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순천 김씨의 집성촌으로 전통을 숭상하면서 풍요롭게 사는 마을로, 주산에는 여름철이면 백로가 온 산을 하얗게 덮어 장관을 이룬다. 30여년 전 당산 서북쪽 능선부리에서 공사중 우연히 발견된 고분에서 청동수저, 칼 등 고대 유물이 출토됐다. 입지조건상 선사시대인들의 거주처로 충분한 조건을 갖춘 곳이다. 체계적인 조사가 요망된다.

△김포시 식수난 해결위한 상수도 하저터널= 우리 35만시민들은 수돗물을 먹으면서도 물이 어디에서 어떻게 와서 먹고사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 한강하류에 살고 있으므로 대부분의 시민들은 한강물을 정수해서 먹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다. 필자가 2010년 김포시장 재직 당시 한강신도시가 들어오면서 수돗물이 부족하게 될 것에 대비, 수자원공사와 LH공사 부담으로 팔당에서 일산을 거쳐 파주로 가는 원수 60만톤 중에서 13만 7000톤을 고양시 행신동에서 분기해 김포로 끌어 왔다. 이 때 한강을 도하하기 위해 한강 밑으로 약 40M 깊이에 2.2Km 하저 터널을 뚫고 직경 1.8M의 도수관로를 통해 이 곳 전호리 홍합부리를 거쳐 고촌정수장에 도달한 물을 정수해 양질의 팔당물을 먹고있는 것이다.

△아라뱃길 등 육·해·공 교통의 요충지= 마을앞 아라뱃길을 통해 서해바다로도 나갈 수 있고 한강을 통해 서울로도 갈 수 있다. 그뿐 아니라 10분 거리에 김포공항이 있고 30분내에 인천국제공항이 있다. 그야말로 육·해·공 교통의 요충지이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전호리. 향후 아라터미널이 활성화되고 한강시네폴리스가 완성되면 살기 좋은 지역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한강의 철책선이 걷히고 영사정 앞에 한강공원이 조성되면 쾌적하고 경치 좋은 전호리에 외국인 손님맞이 오성급 관광호텔도 들어설만도 하다. 그러면 또다시 부자동네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강경구 前시장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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