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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시의 관문, 전호리

[강경구 前시장의 우리고장 이야기<15>- 고촌읍 전호리(錢湖里)Ⅰ]


우리 김포시 관문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운하인 경인아라뱃길 상류에 위치한 전호리는 한강 행주대교와 김포대교 사이에 있는 해발 74M높이의 전호산을 둘러싸고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마을앞 벌판에 경인아라뱃길 김포터미널이 들어서 있고 그 위에 김포아라대교와 전호대교가 장엄하게 뽐내고 있다.


돈 많은 부자들이 많이 살았다는 전호리(錢湖里)

현재 전호리의 판도안에는 옛날 제진리(濟津里)와 평리(坪里)의 두 개 법정리가 있었다. 조선 정조 13년(1789)의 호구조사표를 보면 김포군편에 임촌면(林村面)에 화기리(禾基里), 신곡리(新谷里)와 함께 제진리, 평리가 있었다. 그 후 헌종, 고종 광무3년(1899)까지도 법정리로 존치되어 왔으나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앞의 두 개 리를 법정 전호리(錢湖里)로 합병하고 고란태면과 임촌면을 통합해 고촌면에 소속해 오다가 2009년 9월1일 고촌읍으로 승격,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호리(錢湖里)의 명칭

마을 이름의 전(錢)자는 돈 전자이고 호(湖)자는 호수 호자로도 사용하지만 호해지사(湖海之士)라는 뜻을 보면, 호기(豪氣)가 있고 야(野)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호걸 호, 걸출한 사람, 귀인, 우두머리라는 뜻)
김포시청 뒤 북성산(北城山, 지금의 장릉산)에 조선조 16대 임금 인조(仁祖)의 부친인 추존왕(追尊王) 원종(元宗)과 동비(同妃) 인헌왕후 구씨(具氏)의 묘를 경기도 양주군 곡촌리에서 이장해 와 흥경원(興慶園)이라 불러 오다가 인조10년(1632) 봉릉해 장릉이라 칭하게 되었고, 옛날부터 전해오던 군호(郡號)인 금릉군(金陵郡)을 더 즐겨 사용하게 되자 중국의 금릉이라는 곳 부근에 전동(錢洞)이 있다하여 이 마을의 이름을 처음에는 전당(錢塘)이라고 전해 오다가 전호리(錢湖里)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설로는 옛날 이 마을에 부자가 많아 돈을 물 쓰듯했다 하여 전호리(錢湖里)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옛 문헌의 지도나 읍지(邑誌)들에는 제진리를 제진도(濟津島)라 기록하고 있는 바 한강제방을 막기 전에는 이 마을이 항상 물에 둘러싸이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섬의 형태였을 것이다. 제진도는 ‘나루를 건너는 섬’이라는 뜻으로 나루가 있었던 듯하다.

● 소지명
(1)아랫말 (2)가운데말 (3)너머말 (4)웃말 (5)안골: 등성이 너머 한강쪽으로 예전에는 기와집이 300채나 있었다고 한다 (6)당산: 이마을의 진산으로 전호산이라한다(해발 74M) (7)못무물 (8)안골우물 (9)전호교 (10)대골바위 (11)제남정(대흥현감 김종(金琮))이 세운 정자터 (12)빙고터(얼음창고) (13)치마바위 (14)홍합부리(예전에 홍합을 캐던 자리라고 하며, 임진왜란때 행주산성전투에서 패한 왜군이 죽은 골짜기라고도 전한다) (15)멍성바위 (16)달 바우 (17)다릿개 (18)개논 (19)지루거리 (20)구래논 (21)뒤뜰모텡이 등이 있다.

<제195호에 전호리 Ⅱ편이 계속됩니다>

강경구 前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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