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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머물렀던 섬, 유도
[강경구 前시장의 우리고장 이야기 ⑭월곶면보구곶리(甫口串里) <2>]


머무르섬(유도:留島)의전설

머무르섬(유도)은 육지에서 500여m 떨어져 한강하구 비무장지대 내에 위치한 무인도로 월곶면 보구곶리 산 1번지와 2번지 두필지로 되어 있다. 이 섬은 까마득한 옛날 홍수에 떠내려오다가 이곳에 머물렀다는 전설과 함께 ‘머물은섬>머루무섬’이 됐다고 전해온다.
‘머무루’가 변음(變音)되어 머머리, 머머루 등으로 부르기도 하고 유도(留島), 사도(巳島)라는 한자지명이 사용되기도 한다. 지금은 무인도이지만 6·25 한국전쟁 이전에는 농가가 두 채 있었고 농사도 지었다고 한다.

섬의 형태가 개가 누운 모양이라 하는데 서쪽이 머리에 해당한다고 전해온다. 입과 코에 비정(比定)되는 부분에는 동굴이 있고 그 속에는 이무기가 살고 있다고 전해오며 명당(明堂)이어서 팔정지하구묘하(八井之下九墓下)라 불러왔다.
마을 북쪽 한강이 끝나는 지점을 알려주는 머무루섬은 백로, 왜가리 등 한여름 철새의 낙원이 되어 남북의 평화의 메세지를 전해주는 전진기지의 기능을 다하고 있다. 전설대로 그곳에 큰 동굴이 있다면 초기의 인류는 주로 해변에 머무르며 바다의 풍부한 어패류를 식량으로 동굴에서 살았다고 하므로 그 동굴은 아득한 옛날 우리의 조상들이 살았을 주거공간이 되기에 충분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직접 확인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통일염원의상징‘평화의소’

1997년 1월17일 오후12시30분 해병청룡부대장병들이 일명 ‘부엉이작전’을 통해 한강과 서해바다가 만나는 남북중립수역구역인 월곶면 유도(留島)에 5개월 넘게 고립돼 있던 황소를 육지로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민간인 출입이 제한된 한강하구 한 가운데 무인도에서 황소가 발견된 것은 1996년 8월 집중호우시 경기북부지역에서 발생한 대홍수 때문이다. 주인찾기에 나선 김포시는 끝내 주인이 나타나지 않자 이 황소가 북한에서 떠내려온 것으로 보고 남북관계의 상징성을 반영해 ‘평화의소’라는 새이름을 지어 주었다.
구출이후 김포농업기술센터에서 사육되던 ‘평화의 소’는 1998년 1월 북제주군의 한우 암소‘통일염원의 소’를 신부로 맞았고 2006년 5월29일 16세의 나이로 폐사했다. 김포농업기술센터에서 2005년까지 사육되던 ‘평화의소’는 폐사 전까지 총 7마리의 송아지를 생산했다. 폐사 후 김포농업기술센터에서 관리하던 이 황소의 유골이 김포 통진두레놀이보존회로 옮겨졌다. 보관관리의 어려움 때문이다. 송아지 일부는 제주도 우도(牛島)인 친정으로 보내 그 곳에서 잘 자라고 있고 그 송아지 이름은 ‘평화통일의 소’라고 지었다.

휴전선이 걷히고 통일이 되는 날 강 건너에 고향을 둔 개풍군 또는 연백군의 실향민은 물론이고 낭만과 서정을 가득 실은 삐걱거리는 나룻배가 조강을 마음대로 오가며 뱃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기원하며 강 건너의 개풍군 땅과 코 앞의 머무루 섬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면서 차를 몰아 들어간 길을 되짚어 돌아나올 수 밖에 없으니 에인 가슴이 진정되지를 않는다.

제언: 보구곶리를 ‘염하강풍천장어’촌으로 명소를 만들어보자
보구곶리는 천혜의 청정지역이다. 염하강(鹽河江)변 멀밋동산 서편들에 있는 ‘큰개’갯골은 장장 1km 이상이나 되며 풍천장어 가두리 양식장으로 적지라고 생각된다. 보구곶리일대를 ‘염하강풍천장어’촌으로 명소로 만들었으면 한다.

강경구 前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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