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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개풍군을 왕래하던 길손들의 낭만이 서려있는 마을

[강경구 前시장의 우리고장 이야기-10 /하성면 마근포리(麻近浦里)]

김포시청에서 48번 국도를 따라 강화방면으로 약 11km 정도 가다보면 하성 삼거리가 나온다. 그 곳에서 다시 북쪽 방향으로 약 10km를 더 가면 민통선 북방지역 최북단 한강하구에 마근포리가 있다. 이곳은 약 2km에 이르는 강 넘어 북한의 개풍군 임한면 정곶리(丁串里)와 마주하는 마을이다. 공기 좋고 물 좋은 청정지역으로 서울 등 외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사를 오고 있다.


마근포의 유래

마근포는 강가에 있어 이웃 시암리와 함께 선사시대로부터 조상들이 거주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고기잡이를 위한 뱃길의 무사함을 용왕에게 빌던 당산을 볼 때 제사장이 부족장이던 선사시대에는 ‘검이 다스리던 마을’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검’은 신(神)또는 왕을 뜻하는 용어다.
옛날에는 이웃마을 마조리, 수곡동, 양택리, 양존동까지 갯골이 있었는데 이 갯골을 막은 후부터 ‘막은 갯골’ 즉 ‘막은 개’를 한자로 ‘麻近浦’라 쓴 것이라 한다. 또한 일설에는 마곡, 마조리에서 가까운 포구라는 뜻이며, 마곡 마조리 부근에서 생산하는 마(麻)를 실어 수로를 통해 다른 곳으로 운반하는 곳이라는 설도 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민가는 대부분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100여 호의 민가가 있었다. 반면 하성면 소재지 마곡리에 민가가 20여 호 정도로 알려져 있으니 마근포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마근포에는 지금의 5일장에 해당하는 대규모 공판(장터)장이 있었고 세곡을 실어온 배에서 내린 쌀과 가마니를 보관할 수 있는 창고가 3개 정도였다고 전한다. 뿐 만 아니라 화물수송선 3~4척과 어선 30여 척, 4개의 선술집이 있어 당시의 번성함을 추측케 한다.

마근포의 지명은 일제가 식민통치의 편의를 위해 1914년 행정구역을 폐합할 때 마음도리와 마근포의 두 개 법정리를 폐하고 신리(新里)라 했으나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마을주민들의 항의로 지금은 마근포리라고 부른다.

3. 소지명(小地名)
①마음두 ②모탱이 ③기터뒤 ④쑥댓골 ⑤황소머리 ⑥ 검은논 ⑦숫돌논 ⑧ 사날들 ⑨해지기들 ⑩부엉바위산 ⑪당산(堂山) ⑫마근개 ⑬엿방구지(그림)


통일 한국을 위해 반드시 복원해야

마근개, 마음도(두)가 모두 특이하고 생소한 지명들이지만 오랜 역사를 간직한 마을들이다. 마음도(두)란 지명은 예전 이 마을에서 천지신(天地神)에 제사를 지내왔다는 의미가 담긴 지명으로 당산, 기터 같은 마을이름에 그 자취가 남아있다.

<조선지지자료>에 ‘마근개 주막’이 등재되어 있다. 옛날 마근개가 포구였을 때 개풍군을 왕래하던 길손들의 낭만이 서리어 있는 마근개의 앞강에는 물 반 고기반이라 할 정도로 고기가 많아 숭어, 민물장어 등을 몇 가마씩 잡아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1968년 북한 공작원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하고 2년이 지난 1970년대 초 마근포 제방에 철책선을 설치하면서 강가는 민간인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수많은 철새들과 물고기들이 남북 회환(悔恨)의 강을 거리낌 없이 오고 가는 곳이다. 한민족끼리 총칼을 겨누며 오지도 가지도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철책선을 하루 빨리 거둘 수 있는 통일 한국시대를 기대해 본다.

강경구 前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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