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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을 향한 유일한 포구, 토정 선생의 물참연구 공간”

[강경구 前시장의 우리고장 이야기/ ③ 월곶면 조강포]

월곶면 조강리(祖江里)는 할아버지 조(祖)자와 물 강(江)자가 아우러진 표현으로 사람이 늙으면 명운(命運)을 다하듯이 강물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것에 유추한 지명이다.

이러한 조강이 품고있는 지역은 한강과 임진강이 서로 만나 서해바다로 들어가는 접점(接點)까지를 말하는데 하성면 시암리와 마주한 파주군 교하면 오두산앞 부터 월곶면 보구곶리 앞 유도(留島)까지 남북한을 경계로 한 DMZ 일대다.

그리고 대규모의 포구가 있던 조강리는 애기봉 서북단산 아래에서 조강의 중심을 이루었다. 이 곳은 해마다 실향민들이 모여 고향을 그리워하며 망향제를 지내기도 하고 매년 성탄절에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설치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6·25 이전 수로 교통의 요지
김포에만 조강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조강리 건너편에는 6·25 이전 왕래가 잦았던 황해도 임한면에도 하조강리가 있다.
조강포는 고려와 조선시대,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올라오는 모든 세곡들과 물화를 실은 배들이 강화도와 김포 사이로 흐르는 좁은 바닷길(염하강)을 통하여 송경(개성)과 한양(서울)으로 가기 위해 거쳐 가던 수로교통의 요충지였다.
그뿐 아니라 서울이나 인천지역에서 개성을 가려면 반드시 이곳 조강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건너야 했으므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조강도(祖江渡)로 기록될 만큼 번성한곳이었다. 이곳은 서해안 해산물의 집산지로서 주민의 70%가 어업에 종사하고 나머지는 농업에 종사하였다고 한다.

조강(祖江)은 조수간만(潮水干滿)의 차가 극심한 곳이 다. 민물과 짠물이 교차되는 기수(汽水)역으로 민물고기와 바닷고기가 공존하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봄과 여름철에는 새우와 황복, 웅어, 깨나리가 많이 나고 가을과 겨울철에는 뱀장어와 숭어, 농어가 주류를 이루는 곳으로 고기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세종실록에는 이곳의 황대어(黃大漁)는 그 맛이 유명해 중국의 왕이 사신을 보내 구해오라고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강포구의 수호신(守護神) 당산(堂山)
조강포구 앞에는 당산(堂山)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아름드리 큰 고목나무들이 우거져 있었고 온동리 사람들과 그 곳을 건너려는 객들이 주막(酒幕)에서 쉬어가는 유일한 공원이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어부들의 무사 귀환과 조강나루를 무사히 건너기 위한 기원제, 마을의 풍농(豊農)과 안녕을 비는 용왕제를 1주일간씩이나 지냈다고 한다.

조강리에는 연평도 등 서해 앞바다에서 큰 황조기를 잡아오는 중선(큰배)이 두 척이나 있었고, 똑대기 수송선과 작은 어선들이 여러 척 있었다고 한다.

통일의 그 날을 위해 꼭 복원해야
이 곳은 ‘토정비결’을 연구했던 토정 이지함 선생이 조수간만(潮水干滿)의 때를 정확히 측정하여 ‘조강물참’이라는 일화를 남긴 한강어구의 중요한 나루터였다. 이지함 선생은 서해의 밀물과 썰물의 시간때를 조강포 뒷산에 움막을 짓고 생활하면서 달 뜨는 시간과 좀생이 별을 보고 밀물과 썰물의 기준을 잡았다고 한다.

지금 조강포는 비무장지대로 2중 3중의 철책선이 처져 있지만 통일의 그 날을 위해 반드시 복원해야 할 김포의 대표적인 포구다.

강경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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