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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방전 소유 경작지, 왕실에 쌀과 채소 공급

【강경구 前시장의 우리고장 이야기 ①조선왕실의 곳간, 김포】

김포는 고려의 수도 개경과 조선의 수도 한양의 중간에 위치해 있으며 일찍부터 물자를 실어 나르는 뱃길이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김포일대는 강과 바다에 접해 있으며 따뜻한 기온으로 벼농사에 매우 유리한 점이 많아 한반도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로 정평이 나있다.
그러나 한강과 임진강의 합류점 부근이어서 수량이 일시에 불어나는 반면 산과 구릉이 있어 강폭은 오히려 줄어 물이 자주 넘쳤다. 특히 문수산이 늘어선 월곶면 강안은 하류에서 올라오는 조수, 즉 바닷물이 만조(滿潮)를 이루게 되면 해일(海溢)과 범람으로 영농에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오래 전에는 강과 접하고 있지만 마을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던 이 일대는 이후 계곡물이 흘러나가는 어귀, 다소 완만한 사면을 형성한 곳에 마을이 들어서고 강물의 범람을 막고 자강둑을 쌓으면서 포구가 형성되고 오늘의 모습을 갖게됐다.

김포에서 강건너. 지금의 풍덕군으로 가려면 조강나루와 강령나루를 이용하였는데 물살이 잠잠해질 때가 아니면 항해가 불가능했다. 또한 만조를 타면 여러척의 어선이 이곳에 들어올 수 있지만 간조 때는 완전히 말라 움직일 수 없다. 그래서 물때를 기다리기 위해 계류하고 있는 배가 많았고 따라서 주막과 보행객주가 들어서 조강나루 일대는 성황을 이뤘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이곳에 명나라 사신이 황제의 명을 받아 구해갔다는 황대어(黃大魚)가 난다'고 했는데 황복(黃鰒)으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김포일대가 곡창지대로 명성을 유지해온 배경에는 범람으로 토양이 풍부해졌지만 개인은 위험부담이 많아 둔전(屯田)으로 왕실이 관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재난으로 수확량이 감소하더라도 정부에서 바로 면세 혜택을 내린 것도 이러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김포일대는 왕실의 토지인 궁방전(宮房田)이 있었다.
궁방전은 내수사·수진궁·명례궁·용동궁 등 궁가에 지급된 전토로서 궁중에 쌀과 채소를 공급하기 위한 것으로 특히 지금의 덕수궁으로 불리는 명례궁(明禮宮)의 토지가 하성면을 비롯 양촌과 통진 등 옛 통진부(通津府) 일대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왕실의 토지로서 가마나 말을 관리하는 사복시(司僕寺)의 땅이 지금의 고촌읍 등지에 있었다.

강경구 전 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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