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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의선컬럼 '냉수 한 사발'
최의선 칼럼


세 딸 중 막내인 내가 쓰러진 친정어머니 모시기를 자청한건 시어머니 때문이다.

맏며느리인 나는 결혼이후 단 하루도 시부모님과 떨어져 살지 않았고, 시어머니는 직장 생활하는 며느리 대신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하셨다. 그런 시어머니는 85세가 되시면서 녹내장으로 앞을 잘 보지 못하시더니 치매가 겹쳐서 왔다.

시어머니 치매는 먹는 치매로 아침 드시고는 연이어 지금이 점심이냐, 저녁이냐는 식사시간을 묻는 질문으로 하루를 보내시는 지극히 조용한 치매에 속했다.

괴산 깊은 산골에서 아주 가난하게 사셨고 서울에서도 힘들게 사셨으니, 늘 배를 곯았으므로 그런 치매가 온 것이다. 어쩌다 외손주가 와서 밥을 축내면 당신은 냉수에 간장 한 숟갈 넣어 훌훌 마시는 것으로 끼니를 대신하셨을 만큼 며느리 밥을 어려워했다.

한번은 점심으로 절편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열개든 한 팩에서 다섯 개를 드렸다.

어머니는 한 입에 들어가는 조그만 절편 다섯 개를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드시고는 입맛을 다시면서 더 없느냐고 했다.

나는 “없어요!” 야멸차게 말했는데, 돌아가신 후 잘못한 일중에서도 그 일은 너무나 맘이 아파 지금도 절편을 보면 콧등이 시큰해진다.

돌아가시기를 원하면서, 그리고 대소변 치우는 게 싫어 연명할 양만 드렸으니, 나는 시어머니 배곯게 한 죄를 면할 수 없다.

돌아가신 후 그런 자책으로 괴롭던 중에 친정어머니가 쓰러지셨으니, 일말의 양심이 있던 나는 이 일은 하느님이 내게 속죄의 기회를 주신 것이라는 생각으로 기꺼이 엄마를 모셔왔다. 허나 그 마음은 1년 이상을 가지 못했다. 서서히 대소변치우는 삶이 지겨워지면서 다시금 업을 쌓기 시작했다.

그 엄마는 그래도 딸이 있어 양로원에 가지 않고 사시는 일에 위로받으면서, 나를 위해 기도를 잊지 않으시는 생활로 8년을 계시다 하늘나라에 가셨다.

내 주변 사람들은 시어머니, 친정어머니를 10년 수발 했으니 복 받을 것이라는 말을 하면 속으로는 “그 10년간 죄 옴팍 졌다구요.”하면서 쓴 웃음을 짓는다.

부모마음을 풀어드리기 위해서는 냉수 한사발이면 되지만 자식은 황소 한 마리를 잡아도 될까 말까한 것도 뒤늦게 안 사실이다.

시어머니가 내 삶의 수호천사였음을 돌아가신 연후에야 깨달은 것만도 다행스럽다. 내 가족을, 내 이웃을 맘껏 사랑하고 살 수밖에 없음을 알게 해준 수호천사가 있었기에 이제 나는 세상이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본지편집위원.방송작가>

최의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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