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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저널, 김포일대서 최초 해군사관학교 발견

탐사저널리즘의 개가

고종황제 지시, 근대식 해군군사 교육기관 역할
강화순무 초대교관 부인이 영국에서 가져와 전래

우리나라 최초의 해군사관학교가 김포한강수로 염화강변에 존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최초 해군사관학교는 1893년 3월 고종황제의 지시에 의해 한강수로 염화강변 강화대교 아래(강화도쪽)에서 개교, 1년3개월간 영어와 해군사관교육 등 근대식 군사교육기관으로 존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알려진 해군사관학교는 1945년 11월 손원일씨가 지휘하는 70명의 대원으로 ‘구표훈원(舊表勳院)’에서 해방병단(海防兵團)을 발족한 것과 1946년 경남 진해에서 113명의 해군사관생도를 모집한 것을 창설일로 공인되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52년전 이미 염화강변 갑곶진에 근대식 해군영과 해군사관학교가 개설되었으며 영국정부가 추천한 해군군사교관 Callwell대위가 군사교관으로 초빙되어 왔음이 밝혀졌다.

Callwell대위의 계약기간은 2년이며 봉급은 5천원으로 12개월에 나누어 지급됐다.

이같은 사실은 5년전 김재승씨가 영국국립문서보관서에서 마이크로필림을 입수, 분석한 바 고종이 근대식군함을 도입하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이루어졌음을 ‘한국근대해군창설사’를 통해 밝힌바 있음을 본지가 최근 확인했다.

당시 조선왕실은 초대 해군군사교관을 고용하기 위해 서울주재 영국총영사관과 전문 12개 조항으로 이뤄진 고용계약서를 작성하며 거주시설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매월 40원을 지불하며 부임여비와 귀국여비로 7백원을 부담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해군 군사교관 고용계약서에 기재된 당시 학교명은 조선수사해방학당(朝鮮水師海防學堂)이라 했으며 영국외교문서는 Corean Naval School(조선해군학교), 미국외교기밀문서에는 The Naval School(해군학교), 당시 서울에서 발행했던 영문잡지 The Korean Repository는 The School for Naval Cadets(해군사관후보생학교)로 각각 표기되어 있다.

아울러 사관생도수는 50여명이며 나이는 18세에서 26세에 이른 것으로 나타나 있다.

당시 학교는 현재 강화대교 아래 한식 기와건물로 바닥에는 마루가 깔려있는 학교본관이 있었으며 교관과 조교용 관사는 교정에서 2km 떨어진 언덕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교관용 숙소는 나무판으로 둘러싸인 베란다 형식의 큰 마루로 되어 있었으며 겨울철에는 거주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생도들은 교사용 숙소 인근에 세 개의 방이 막사처럼 마련된 건물을 기숙사로 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초 해군사관학교의 교관단은 영어교사 Hutchison, 군사학교관 Callwell대위, 포술학교관 Curtis 하사관으로 구성됐으며 Callwell대위와 Curtis 하사관이 가족을 동반하고 강화도에 거주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현재 강화도 특산물인 보랏빛 순무는 Callwell대위 부인이 영국에서 가지고 온 무를 이곳에서 재배한 것이 시초로 1897년 발표된 The Morning Calm은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초 해군사관학교는 청일전쟁 발발로 왕실의 관심부족과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정부 고위관리를 위협하며 학교와해를 주도, 1년3개월만에 폐쇄함으로서 근대식 해군창설과 군함을 운영할 기간요원 양성계획은 좌절되고 말았다.

곽종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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