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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동(本洞) 유감-시대를 역행하는 작태를 멈춰라

요즘 김포는 본동(本洞) 명칭 사용 논란으로 뜨겁다.

김포시와 목에 힘깨나 주는 동네 몇 유지(?)들은 동 이름을 본동(本洞)이 들어가는 명칭을 사용하겠다고 목울대 세우며 요구하고 일부 언론과 시민사회단체에서는 행정동의 기원이 일제 강점기 정회(町會)에 두고 있는 본정(本町)에서 유래한 용어인 본동(本洞)은 일제잔재임에 동명칭으로 부적절함을 주장, 이 두 요구와 주장이 강하게 부딪히고 있다.

김포시의회도 지역에서 꾸준하게 제기된 명칭 논란이 있었음에도 엄밀한 문제제기나 고증절차 없이 시의 요구대로 상임위(행정복지위원회)와 본회의를 통과시켜 김포시 거수기 노릇을 자청, 이 논란의 확산에 단단히 한 몫 거들었다.

행정동의 기원은 일제 강점기의 정회(町會)에 두고 있다. 정회는 정(일본어 : 町), 정목(丁目)을 단위로 하여 설치된 부(府)의 말단협력 보조기관으로 당시 경성부에는 280여 개의 정회가 있었으며 이 정회 제도는 일제 강점기 말기에 생긴 것으로 군정기에도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정(町)을 동(洞)으로, 통(通)을 로(路)로, 정목(丁目)을 가(街)로 명칭 환원이 이루어질 때 동회로 개칭하여 사용하였고, 점차 동으로 명칭 일원화가 되었다.(지식백과일부인용)

우리나라의 지명은 역사적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변천해 왔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면 우리나라 지명만이 갖는 특징이 있는데, 이는 우리 지명의 대부분이 자연 환경, 풍속, 지형, 기후, 정치, 군사 등에서 유래되었다는 점이다. 판교(板橋)는 다리가 있었던 곳이고, 충무(忠武)는 이순신과 관련이 깊은 곳이며, 잠실(蠶室)은 누에를 치던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각각의 지명에는 그 지명의 유래가 되는 역사적 사건, 인물, 전설 등이 담겨 있다.

해방 후 국토 개발에 따라 새로운 지명이 생겨났는가 하면, 고유의 지명이 소멸되거나 변질되기도 했다. 공항동처럼 새로운 이름이 생긴 반면에 굴레방다리, 말죽거리, 장승백이, 모래내, 뚝섬과 같은 고유 지명은 행정구역 명칭으로 채택되지 않은 채 잊혀져가고 있고 또한 그 지역의 고유 지명을 외면한 행정 편의적 발상에 의해 의미도 없는 숫자로 된 지명이 생겨났는데 1동, 2동, 3동... 등이 그렇다.

조선시대 행정구역 주·현·면·리는 마을의 규모와 기능에 따른 구분이며 본리(本里)가 존재하였던 것은 본래의 마을을 의미, 행정단위의 명칭은 아니다. 근대에 동·통·반의 제도도입으로 본동이란 행정단위가 등장하지만 이는 명확히 본리동이라고 하여야 맞다. 김포본동, 장기본동이란 명칭을 새롭게 행정 편의적으로 명명하는 것은 지역의 전통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일제의 잔재인 혼마치를 본동으로 이름 함과 다르지 않다.

동 이름을 쓸라치면 예쁘고 정감있는 우리 이름도 많은데 애써 혼마치의 한자어를 마을이름으로 개정하여 반역사, 몰정체성, 자기중심적인 명칭 분란을 확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지역사회가 공동의 목표를 수립하고 공동체적 과정과 활동을 통해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때, 전통을 되살려 지역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역민의 자긍심을 고취해 나가고자 하는 이 때, 본동(本洞) 명칭 결정은 시대를 역행하는 작태이며 행정 편의적 적폐라 아니할 수 없다.

“얼빠진 사람은 얼빠진 인생을 살 수밖에 없고, 얼빠진 국민은 얼빠진 역사를 만들 수밖에 없다” - 단재 신채호-

김대훈 김사연 집행위원장  webmaster@gimpoj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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