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
本洞 遺憾 ... 명칭변경 졸속 추진 안 돼장기본동은 ‘운유동’으로, 김포본동은 ‘중봉동’으로 하자
   
▲ 2006년 당시 장기동 입구 지경의 모습<사진=김포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름을 중히 여긴다. 이름은 분명히 자기 것이지만 주로 남이 불러주는 것이기에 이름은 공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따라서 이름은 함부로 지어서도 안 되고 적당히 지어서도 안 되는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은 보통 이름이 본명인 ‘휘’(諱)와 ‘자’(字), ‘호(’號) 3개였다. ‘휘’는 태어났을 때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고, ‘자’는 장가든 뒤에 스스로 짓는 이름이다. ‘자’를 가진 후에는 그 때부터 본명은 웃사람에게 말하는 외에는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웃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를 때는 본명을 부르지만 동년배나 아랫사람은 보통 ‘자’를 부른다. ‘호’는 대부분 거처하는 곳이나 자신이 지향하는 뜻, 좋아하는 물건을 대상으로 짓는 경우가 많다.

이름이 여러 가지인 까닭은 ‘본명이 알려지면 주술로써 저주하거나 죽일 수 있다는 인식’이 있어 본명을 부르는 것을 꺼리거나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해 본명인 ‘휘’ 외에 부르는 이름인 ‘자’를 부르는 관습이 생겼다. 심지어 나중에는 '자'도 막 부르면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아서 '호'를 만들게 되었다.

이름을 중히 여긴 선조들은 이름을 지을 때도 아무렇게 짓지 않았다. 너무 이름이 고우면 귀신이 귀한 집 자식인 줄 알고 잡아가니 일부러 천한 이름을 붙였다. 또 금과 은 같은 ‘보석’이나 ‘용’, ‘호’ 등 기운이 센 글자도 피했다. 타고난 그릇에 비해 너무 좋은 이름을 받으면 이름에 휘둘려 원래보다 못하게 살게 되고, 또 이름에 이미 좋은 것이 다 들어 있으면 더 이상 인생에서 얻을 것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람 이름 하나 지으려 해도 생각할 것이 여러 가지다. 사람이 여러 명 살고 있는 지명을 정할 땐 더더욱 신경써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우리 땅의 지명은 대대로 살고 있는 곳의 형태나 산물을 특화해 아름다운 우리말로 지어 불러왔다. 하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이름이 망가진 것은 일제에 의해서다.

일제는 1914년 우리나라 전역의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두세 마을을 합해 하나로 만들면서 각 마을 이름 중 한 글자씩을 따 조합해 지명을 만들어 영혼불명의 지명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일제의 작은 마을의 이름을 없애는 이러한 만행은 후세 사람들이 지금 불리워지고 있는 지명이 왜 그러한 이름이 붙었는지 모르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했다.

우리 김포만 해도 일제가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며 고란태면과 임촌면을 합해 고촌으로, 양릉면과 반이촌면을 합해 양촌으로 지명을 정했다.

이름 하나 하나가 지극히 중요한 문제임에도 요즘 김포시가 지명을 바꾸는 것을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김포시는 김포1동을 김포본동으로, 김포2동을 장기본동으로 명칭을 변경하기 위해 김포시의회 제175회 임시회에 '김포시 읍·면․·동리의 명칭과 관할구역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상정, 김포시의회 행정복지위원회(위원장 염선 의원, 위원 황순호·피광성·신명순 의원)가 관련 조례안에 대해 질의없이 원안통과시켰다.

김포시의회가 그동안 관련 상임위에서 통과된 안건에 대해 별다른 이의없이 그대로 가결시킨 전례에 비추어 볼 때 이번 김포시의 행정동 명칭 변경안 역시 28일 제2차 본회의에서 통과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김포시는 김포시대로 ‘본동’이라는 명칭은 해당 주민들이 원하고 있고 일제 전부터 본동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근거가 있어 일제잔재라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이지만 지역언론사와 시민단체들은 '본동'은 일본 잔재라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

김포시가 명칭변경을 추진하고 있는 김포1동과 김포2동의 지명에 대해 살펴보자. 김포시가 지난 1995년 2월 발간한 <김포시 지명유래집>에는 해당 지역의 지명에 대해 유래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장기동(場基)은 말 그대로 장터라는 뜻으로, 현재 고창초등학교 일대에 제법 큰 장이 섰던 곳으로 장터마을이라는 의미로 장기라 불려왔다. 일제는 1914년 이곳 장기리와 이웃 운곡, 고창, 지경, 도곡을 합쳐 장기리로 통합했다.

운곡(雲谷) 또한 일제가 운유(雲遊)리와 도곡(桃谷)리를 합해 운곡이라 명명한 것. 즉 ‘구름이 노니는 마을’과 ‘복숭아 나무가 많은 고을’이 강제로 합쳐져 ‘구름 마을’이라는 괴상한 이름이 붙여진 것.

지경(芝境)은 일제가 김포군과 통진군의 경계지역이라며 원래는 지경(地境)이라 이름붙였던 곳으로 어느 때 지경(芝境)으로 바뀌었다고.

북변·걸포·감정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인 김포1동.

북변(北邊)은 구 김포군청의 북쪽에 위치한 마을이어서 북녘마을이란 뜻의 북변동이라 불렸다.

걸포(傑浦)의 전래 지명은 ‘거래(걸+애)’. ‘걸’은 개천의 순우리말로로 ‘개울이 많은 마을’이라는 뜻. 현재도 걸포지역은 하천에 둘러싸이다시피 할 정도로 개울이 많다. 옛날 한강제방이 없던 시절에는 거의 섬과 같은 지형이었을 것이다.

감정(坎井)은 구덩이 ‘감’, 우물 ‘정’으로, 중봉산 아래 우물이 아홉 개 있어 구우물(九井)이라 했고 이것이 굳우물(坎井)로 변했다는 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아홉 개의 우물은 ‘굿우물’로 표기되고 ‘굿우물’이 ‘굳우물’로 발음된다. 구덩이의 고어가 ‘굳’이므로 ‘굳’을 구덩이로 해석해 구덩이 ‘감’자를 써서 ‘감정’이라 써온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동서남북’ 등 방위를 나타내는 단어나 ‘본, 1, 2, 3, 4, 5’ 등 순서를 나타내는 단어를 사용해 짓는 이름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 일반 사람들도 일남, 이남, 삼남 등 태어난 순서대로 붙이는 이름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한때 서울의 유명 달동네이던 봉천동은 각각 본동부터 11동까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봉천본동은 은천동, 봉천1동은 보라매동, 봉천2동은 성현동, 봉천3동은 청림동, 봉천6동은 행운동, 봉천7동은 낙성대동, 봉천11동은 인헌동 등 지역의 유래와 특성을 살린 새로운 동명을 작명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김포시는 세월을 거꾸로 가고 있는 셈. 기왕의 1동과 2동이란 명칭을 변경한다면 본동보다는 지역의 유래와 특성을 살펴 작명하는 노력은 있어야 할 것이다.

김포2동은 장기본동보다는 ‘구름이 노니는 마을’이라는 ‘운유동’으로, 김포본동은 중봉 조헌 선생이 나고 자란 마을이었으니 ‘중봉동’이라 붙이는 게 낫지 않을까.

김종훈 기자  webmaster@gimpojn.com

<저작권자 © 김포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종훈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