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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의 새해 소망

동짓날 팥죽 먹으러 오라는 전화를 받고 마을회관에 가니  할머니들 열댓 분이 모여 있었다. 팥죽을 먹으면서 살아가는 이야기에 꽃을 피우다가 필자가 일본의 백세 시인 시바타 도요 할머니의 시를 읽어주었다.

“92세에 아들의 권유로 글을 쓰기 시작해 지금 백세인데 시가 참 좋아요, 이건 <약해지지 마>라는 시예요,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 짓지 마/햇살과 산들바람은/한쪽편만 들지 않아/ 꿈은/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나도 괴로운 일/많았지만/살아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

그리고는 계속해 <저금>이라는 시도 읽어주었다. “난 말이지, 사람들이/친절을 베풀면/마음에 저금을 해둬/쓸쓸할 때면/그걸 꺼내/기운을 차리지/너도 지금부터 /모아두렴/연금보다/좋단다.”

동네 할머니들이 좋다기에 계속  도요 할머니의 시를 낭송하게 되었다.
 <살아갈 힘> “나이 마흔을 넘기며 맞는/하루하루/너무나도 사랑스러워/뺨을 어루만지는 바람/친구에게 걸려온 안부전화/집까지 찾아와 주는 사람/제각각 모두/나에게 살아갈 힘을 /선물하네.”
<바람과 햇살과 나> “바람이/유리문을 두드려/문을 열어주었지/그랬더니/햇살까지 따라와/셋이서 수다를 떠네/할머니 외롭지 않아?/바람과 햇살이 묻기에/사람은 어차피 다 혼자야/나는 대답했네/그만 고집부리고/편히 가자는 말에 /다 같이 웃었던 오후.”

할머니들은 연신 좋다며 또 읽어 달라 기에 동짓날 팥죽 모임은 시낭송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런 후 할머니들이 제각각 감상을 말했다. “살면서 느끼는 것을 그냥 쓰면 시가 되는 거유?”,  “시가 어려운 건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  “나도 한번 써보고 싶네.”,  “한번 써 보자구요.”,  “이러다 우리 고막리에서 시인 할머니들이 무더기로 나오는 거 아닐까 몰라.”

도요 할머니의 시로 인해 그렇게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한 할머니가 정색을 하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시를 쓰든지 농사일을 잘하든지 다 좋지만 올해 젤 중요한 건 대통령 잘 뽑는 일이야. 내가 뽑은 대통령이 그 모양이라 내가 죄를 지은 것 같다니까 원. 올  새해 소망은 뭐니 뭐니 해도 대통령 잘 뽑는 일이지.” 할머니들은 그 말에 모두 고개를 끄떡였다.

최의선  webmaster@gimpoj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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