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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의 운하(굴포천)는 고려 때부터 시작됐다
[강경구 前시장의 우리고장 이야기<17>- 고촌읍 향산리(香山里) ①]

김포시 관문인 고촌읍의 천등고개를 넘어 김포방향으로 오다 보면 장곡마을(금란초등학교)이 있고 여기로부터 약 2km지점 한강변에 위치한 향산리 종달새 마을은 김포의 문화도시 ‘한강시네폴리스’ 사업이 결정됐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진척없이 수년째 표류하고 있어 안타깝다.


김포의 문화특구‘한강시네폴리스’가 펼쳐질 향산리

옛 김포군 시절의 방리(坊里: 면, 리)가 기록돼 있는 최고의 문헌인 정조 13년(1789)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의하면 고란태면(高蘭台面) 행산리(杏山里)였고 헌종 8년(1842)의 <김포군읍지>에도 앞의 문헌에 등재된 내용과 같다.
그러나 고종 8년(1871)에 간행된 <김포군읍지>에는 행산리 이외에 한기리가 추가로 설치돼 있음이 확인된다. 이후 광무 3년(1899)에 제작된 <김포읍지>에는 다시 한기리가 폐지되고 법정리로 향산리만 편제된다.
일제가 행정구역을 대대적으로 개혁한 1914년 옛 김포군 고란태면의 행산리와 한기리를 병합해 법정 향산리로 편제하고 고란태면과 임촌면을 합해 새로 탄생한 고촌면에 소속시켰다. 지난 2009년 9월1일 고촌면은 고촌읍으로 승격, 현재에 이르고 있다.


향산리의 명칭

향산리는 조선말 고란태면에 속했는데 향나무가 많아서 향산리(香山里)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일제강점 이후에 농경지를 만들기 위해 제방을 축조하기 전에는 십리(十里)나 되는 명사(名沙)와 노화(蘆花)가 만개(滿開)한 갈대펄이 장관(壯觀)이었으며 배가 드나드는 포구로 돼 있었다. 경치가 아름다워 정자를 축조해 많은 시인묵객들이 모여 시를 지었다는 기록도 많다.
옛날부터 이 마을에 고목 향나무가 아홉 그루가 있었다해 ‘구향산리(九香山里)’라 칭했고 향나무 있는 마을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해 ‘상향(上香, 윗상뫼)’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종달새 마을은 한강제방 부근 홍도평들에 있는 마을로 한강제방을 축조하기 전에는 이 일대가 한강의 조수가 드나들던 개펄이었다. 제방축조로 농지가 됐으나 1925년 큰 물로 제방이 유실되면서 모래가 쌓여 불모지가 됐다. 그후 많은 종달새가 깃들어 종달새펄이라 부르게 됐으며 1975년 이후 축산을 하는 몇 가구가 입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돼 ‘종달새’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넣어 종달새 마을이라고 부르고있다.
이곳은 김포의 관문이자 김포시 최대 문화도시인 ‘한강시네폴리스’의 꿈이 펼쳐질 자리이다.

■소지명
<1>구향(아랫상미) <2>상향(윗상미) <3>학터 <4>다방굴(부자마을) <5>김촌말(김씨촌) <6>어갈 <7>허촌말(양천 허씨촌) <8>건달촌 <9>도당산 <10>학터산 <11>향산교 <12>밤모퉁이 <18>상나무배기 <19>쪽다리 <20> 말무덤 <22>갈방매미 <23>공세논(공수전,公須田)

※향산리②편은 다음호에 계속

강경구 前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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