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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해없는 청정 마을, 문화유적(文化遺蹟) 많은 곳

강경구 前시장의 우리고장이야기/⑧대곶면 대명리 1


대곶면 신안2리 안행(雁行)마을

대곶면 신안2리 안행(雁行)마을은 이 마을의 형세가 기러기들이 줄지어 나는 모양이라서 안(雁-기러기안)자와 행(行-늘어설 행)자를 써서 안행동, 안항동, 안항리, 안냥굴, 안앙굴, 안양굴, 안항 이라고도 했다.
이 마을을 가려면 대곶면 소재지에서 초지대교가 있는 강화방향으로 가다가 대명항 입구 사거리에서 우회전 하면 약 100m 지점에 주유소가 있다. 주유소 맞은편 마을길로 약 2.4km 들어가면 덕포진(德浦鎭-사적 제292호)이 나온다. 덕포진 주차장 주변엔 약 3000여 평의 캠핑장도 조성되어 있고, 교육박물관도 있다. 그 곳에서 약 0.8km정도 가게 되면 김포와 강화사이에 흐르는 염하강변에 뱃사공 손돌공의 묘가 있다.

가는 길에는 포대(砲臺)도 있고 파수청지(把守廳址)도 있다. 이 마을에는 재령이씨가 8대를 세거해 왔으나, 지금은 모두 떠나고 부안임씨, 경주김씨, 진주강씨, 강릉김씨 등이 골짜기 마다 작은 마을에 산재해 살고 있으며, 좌굴(안행의 남쪽 산넘어 마을), 작은 안앙굴, 도당골(당제를 지내던 곳) 감투바위, 오망재(대명리방향에서 들어오는 마을입구의 고개) 구부렁재, 좌굴개, 진양굴고개, 약우물부리, 덕포진포대, 파수청지, 손돌목, 작은바위(각시가 굴을 따다 빠져 죽었다는 슬픈 전설의 바위), 묵으내골, 층층논, 과녁밭(예전의 활터) 등 소지명(小地名)이 있다.


덕포진(德浦鎭)

대곶면 신안리 산 103-1 일원에 소재한 덕포진(德浦鎭)은 사적 제292호로 서해(西海)로부터 강화만(江華灣)을 거쳐 서울(한양)로 진입되는 인후(咽喉)인 손돌항(孫乭港)에 천험(天險)의 요새(要塞)를 이용하여 군사의 요충지(要衝地)로, 창설한 시기는 임진왜란(壬辰倭亂)의 쓰라린 체험을 겪은 조선왕조의 선조조(先祖朝)로 추정된다.
그 후 영조36년(1760년)에는 덕포진에 종삼품의 수군첨사가 수군 316명을 지휘했으며 방선(防船) 2척, 병선(兵船) 1척, 사후선(伺候船) 3척과 객사(喀舍)가 2칸, 내외진사(內外鎭舍) 9칸, 삼문과 행랑이 10칸 반, 어변정(禦變亭) 10칸, 무기고 3칸, 파수청(把守廳) 4칸이 있었다 한다. 천혜의 지형을 이용해 설치한 군영 덕포진은 병인양요(프랑스군), 신미양요(미국해병대)때 서구열강과 치열하게 싸웠던 격전지로 역사적 가치와 유물사적 의미를 지닌 곳이다.

그 후 포가(包架)가 오랜 세월 땅속에 깊히 묻혀 있었던 것을 1970년 9월10일 당시 이 마을 새마을회장이었던 김기송(현 83세)씨가 벼를 베려고 얻어 놓은 인부 10명을 데리고 포대를 출발한 이후 10년 후인 1980년 5월에 대대적 발굴 복원이 이루어져 포가 15개소와 화포 6문이 출토되었고 각 포대에 공급하는 불씨를 보관하던 파수청도 복원됐다.

<다음호 2 계속>

강경구 前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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