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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김포문학상 수상작소설, 수필, 시 2편등 전체 작품 공개

대상작 - <단편소설>

                         로마, 로마, 로마

 

황윤정 

1989년 대구 출생/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8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2019년 부천신인문학상 소설부문 당선

 

우리가 처음 모인 날, 앤 공주는 자신을 소설가라고 소개했다. 이미 오래 전에 저명한 문예지를 통해 등단했고 그 뒤로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나름 신비주의 콘셉트를 고수하고 있어 단 한 번도 인터뷰나 사인회 같은 것을 해본 적이 없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나이가 어린 편인 멤버 하나가 당장 검색을 해볼 기세로 앤 공주를 향해 본명 혹은 필명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앤 공주는 부드럽게 거절했다.

“이곳에서만큼은 저를 둘러싼 수식어를 모두 내려놓고 싶네요.”

그 말투는 아주 나긋나긋하고 고상해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아, 역시 글 쓰는 사람은 뭔가 다르구나!’ 하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칠 년 째 소설 공모전에 도전하다가 슬슬 포기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던 나는 겉으로는 딱히 의식하지 않는 척 했지만 그날 내내 앤 공주를 몰래 힐끔거리며 그녀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앤 공주는 어떤 행동, 어떤 말을 해도 그녀만의 독특하고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심지어 눈가에 잡히는 선명한 주름조차도 우아하게 나이든 소설가의 전형적인 특징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뒤로 일주일에 한 번씩 일요일마다 꾸준히 앤 공주를 만났다.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볼링도 치고 영화도 봤다. 물론 단둘이 논 건 아니었다. ‘서울, 경기 지역 3040 친구 구해요’라는 문구 아래 몰려든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 틈에 섞여 그렇게 나와 앤 공주는 조금씩 가까워졌다. 몇 주가 지나자 나는 앤 공주를 앤 공주님이 아닌 그냥 앤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앤 공주는 나를 케이님이 아닌 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사실 모임 멤버 중 몇 명이 본명을 공개해서 나도 본명을 밝힐까 고민했었지만 앤 공주가 본명을 밝히지 않겠다던 첫 날의 입장을 바꾸지 않았기에 나도 덩달아 계속 닉네임으로 불러달라고 말해버렸다. 조금 달아오른 얼굴로 자신을 따라하는 나를 바라보며, 앤 공주는 그녀 특유의 품격 있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부터 그냥 케이라고 부를게요.”

나는 언젠가부터 닉네임을 만들어야 할 일이 생기면 모두 다 케이라고 썼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그 가운데 첫 번째 이유이자 대외적으로 밝힐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카프카(Kafka)의 케이(K)를 땄다는 사실이었다. 대외적인 이유라고 해서 거짓으로 꾸며낸 건 아니었다. 분명 내게 카프카는 특별한 존재였다. 나는 카프카의 소설을 읽으며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고, 평생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한 채 이방인으로 살았던 실제 카프카와 나를 마음 속 깊이 동일시하고 있었다. 체코에서 태어난,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인 카프카만큼은 아니더라도 실제로 나는 언제나 비주류의 삶을 살아왔다. 십대 미혼모 아래에서 태어나 소심한 성격으로 숱하게 왕따를 당했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소설 쓰겠다고 틀어박혀 지냈으니, 이 정도면 한국 사회가 아닌 어떤 사회에서도 확실히 주류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더더욱 카프카에 빠져들어 지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케이라는 닉네임을 쓰게 된 것에는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두 번째 이유의 영향이 더 컸다. 어린 시절 바다가 있는 마을에서 살았던 나는 엄마가 일하러 간 사이 혼자 모래사장에서 모래성을 지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그때 함께 어울려 놀았던 상상의 친구들 중 리더 격인 아이가 케이트(Kate)였다. 언제나 나와 함께 했던 케이트를 성인이 되어서도 잊어본 적 없기에 일종의 비밀 암호와 같은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케이트의 케이(K)를 따서 닉네임으로 쓰게 됐다. 내게 영향을 미친 시기를 굳이 따지자면 카프카보단 케이트가 먼저인 셈이었지만, 그래서 첫 번째보단 두 번째 이유를 들어 닉네임에 관해 설명하는 것이 훨씬 더 적합한 설명일 수 있겠지만, 어렸을 때와 달리 나이가 든 뒤로는 허구의 인물인 케이트의 존재를 숨기고 사는 게 더 익숙했던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케이가 카프카의 케이라고 늘 이야기하곤 했다.

앤 공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우연히 술자리에서 나란히 앉게 된 날, 나의 닉네임을 궁금해 하는 앤 공주에게 나는 케이트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늘 그랬듯 카프카를 향한 애정만을 마음껏 드러냈다. 그러곤 물었다.

“언니는 왜 앤 공주예요? 설마, 오드리 헵번?”

그러자 앤 공주는 조금 민망해할 법도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 따르면, 그녀가 이십대 초반일 무렵 로마에 놀러갔다가 운명적으로 한 남자를 만났는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며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됐다고. 당시에는 휴대폰도 없어 연락을 이어나가기가 쉽지 않아 그냥 그렇게 추억으로 묻어둔 채 잊고 살아갔다고. 그러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난 뒤 우연히 고전 명화를 방영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로마의 휴일’을 보게 된 그녀는 오드리 헵번이 연기한 앤 공주의 캐릭터가 자신과 무척 닮았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자신을 속박하던 제약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것부터 우연히 만난 한 남자와 로마 곳곳을 누비며 로맨틱한 하루를 즐긴 것, 그리고 결국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까지. 그때부터 그녀는 마음 속 깊이 자신을 앤 공주와 동일시하게 되었고 그래서 앤 공주라는 닉네임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을 이었다.

앤 공주의 이야기는 듣는 사람에 따라 누군가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릴지도 모르는, 또 다른 누군가는 ‘나잇값 못하긴’, 혹은 ‘공주병이야 뭐야?’ 하고 흉을 볼지도 모르는 그런 이야기였다. 실존인물이었던 카프카의 케이를 쓰는 것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문제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앤 공주의 이야기에 곧바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케이트라는 존재가 항상 내 안에 몰래 자리 잡고 있어서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아련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가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리만큼 믿음이 가서이기도 했다. ‘주름 때문일까?’ 나는 생각했다. 우아하게 나이든 소설가의 전형적인 특징처럼 느껴지는 앤 공주의 주름 때문에, 그러니까 다시 말해 앤 공주가 소설가라는 사실 때문에, 내가 그녀를 의심 없이 계속 따를 수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눈가에 잡힌 주름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수긍했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앤 공주는 실제로 소설가가 아니었다. 그녀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소설가이기는커녕 애초부터 문단에 발을 들여놓은 적도 없는, 소설과는 전혀 무관한 작은 할인마트의 평범한 계산원이었다. 아무리 인터뷰나 사인회를 해본 적이 없다고 해도, 또 아무리 본명이나 필명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해도, 활동 중인 작가가 확실하다면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작가의 기본 정보를 찾는 것쯤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검색해볼 엄두를 내지 못했고 무엇보다 앤 공주가 그렇게까지 거짓말을 할 거라고 예상을 하지도 못했다. 앤 공주는 우리와 일요일에 만날 때마다 요즘 어떤 소설을 쓰고 있는지, 출판사나 편집자와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마감일이 다가오고 있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를 떠들곤 했는데 그 모든 것들이 거짓말임을 간파하는 건 소설가로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의 입장에선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랬기에 우리는 앤 공주의 의도대로 완전히 속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그녀의 정체에 의혹을 품게 된 건 모임 멤버 가운데 한 명인 석구 씨가 계산원 옷을 입고 있는 앤 공주와 함께 사진을 찍어 단톡방에 올렸을 때였다. 석구 씨는 살짝 맹하고 순진한 성격의 삼십 대 후반 남자였는데, 서른쯤으로 보일 정도로 꽤 동안에 귀엽게 생겼으며 전체적으로 몸에 근육도 적당히 잘 잡혀 있어서 나름 우리 모임의 인기 스타였다. 미혼이든 기혼이든 석구 씨를 노리는 사람이 많았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세 명이나 번갈아가며 석구 씨와 잤다. 우연히 그 세 명이 같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니 그냥 셋 다 외모만 반반하고 어리바리한 석구 씨를 가지고 논 것 같았지만(그때 나는 석구 씨의 크기, 강도, 지속력까지 다 듣게 되었다!), 석구 씨는 아무 것도 모르는 해맑은 표정으로 매주 모임에 나왔다. 나는 그런 석구 씨를 보며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는 법이지, 중얼거리곤 했다. 그날도 지나치게 해맑은 석구 씨는 발랄한 이모티콘과 함께 앤 공주와 찍은 사진을 우리에게 보냈다.

―우연히 친구네 동네에서 마트 들렀는데 앤 누나 발견!

만약 석구 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마트에 들러 계산원 일을 하고 있는 앤 공주를 발견했다면 소설 쓰기 바쁘다던 사람이 마트 일까지 병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며 왜 앤 공주가 이곳에 있지? 하고 의문을 먼저 가졌을 것이다. 그것이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의 순서였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알기로 앤 공주는 분명 청담동에 살았다. 모임이 끝날 때마다 택시를 잡아 우리가 보는 앞에서 청담동으로 가주세요, 하고 특유의 나긋나긋한 말투로 택시 기사에게 말을 한 뒤 우리를 향해 그럼 다들 다음 주에 봐요, 인사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 앤 공주는 청담동에 사는 구나!’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반면 석구 씨는 청담동과 반대 방향에 살고 있었고, 아마 친구들도 석구 씨와 다 비슷한 지역에 살고 있을 것이었기에 아무리 친구네 동네라고 해도 앤 공주와 마주치기란 쉽지 않을 터였다. 다시 말해 웬만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상하다고 여길 만한 상황인 셈이었다.

그러나 앤 공주와 마주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석구 씨였고 석구 씨는 늘 그래왔듯이 자신이 맞닥트린 일련의 일들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소설가인 앤 공주가 마트에서 일하고 있는 것도, 청담동에 사는 그녀가 다른 지역에 있다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는 사실에만 들떴던 것이다. 그리하여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는 마트 이름이 큼직하게 새겨진 옷을 입은 앤 공주의 사진을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었다. 단톡방 반응은 당연하게도 뜨거웠다. 너도나도 앤 공주가 왜 거기 있느냐고 한 마디씩 했다. 석구 씨는 자신도 이유는 모르겠고 그냥 마트에 왔는데 앤 공주가 계산을 하고 있었다는 말만 반복했으며 앤 공주는 단톡방을 확인했는지 확인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계속 답장이 없었다. 나는 그 상황을 계속 지켜보다가 뒤늦게 한 마디 거들었다.

―혹시 소설 쓰는 데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려고 직접 일하시는 건가요?

아, 정말이지 순진했다. 나는 아마도 앤 공주가 소설가라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믿고 싶어 했었던 것 같다. 내가 칠 년 동안 이루지 못했던 것을 이미 예전에 이루어낸 사람이 맞기를, 내가 앞으로도 그런 사람과 함께 어울리며 친하게 지내기를 원했었던 것 같다. 어쨌든 나의 추측이 꽤 설득력이 있어보였는지 사람들은 갑자기 수긍하기 시작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분명 그런 게 틀림없다, 이런 순서로 대화가 흘러가다 결국엔 앤 공주가 소설을 위한 체험을 하고 있다는 쪽으로 모두 입을 모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그제야 앤 공주로부터 카톡이 왔다.

―일 하느라 지금 봤네요. 이번에 구상하고 있는 장편 소설의 화자 직업이 마트 계산원인데 감이 잡히지 않아 직접 발로 뛰어보기로 했답니다. 석구 씨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요.

우리는 앤 공주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답장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의혹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쉽게 사그라진 첫 번째 의혹과 달리 두 번째로 앤 공주를 의심하게 되었을 때 드디어 우리는 그녀가 정말로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계기가 된 사건을 우리는 ‘젤라또 사건’이라고 불렀는데 나중에는 우스갯소리로 ‘젤라또 게이트’라고 불렀을 정도로, 그것은 우리의 앤 공주를 향한 의심을 증폭시켜 결국 모든 비밀을 알게 만들어준, 말하자면 태풍을 일으키는 나비의 날갯짓과도 같은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젤라또 사건의 발단은 어느 일요일 저녁에 일어났다. 평소처럼 멤버들이 다함께 시간을 보내던 중 앤 공주는 전화가 걸려왔다며 옆자리에 있던 내게 휴대폰 화면을 슬쩍 보여줬다. 김 팀장이란 사람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누구예요?”

“새로운 편집팀장. 정말 성가셔.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괴롭힌다니까.”

“그렇구나. 그래도 받아야하는 거 아니에요?”

“에이, 일요일은 자기들이랑 편하게 놀 거야. 그냥 안 받을래.”

앤 공주는 내가 보는 앞에서 걸려오던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케이는 이제 소설 안 써?”

나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네, 재능이 없나 봐요.”

사실 완전히 놓은 건 아니었지만, 소설을 계속 쓰고 있다고 누군가에게 알리기 싫었다. 그래서 대외적으로는 포기한 척하고 몰래 조금씩 쓰던 중이었다. 앤 공주는 나의 말에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편할 때 작품을 한번 보여 달라고 했다.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혼자 봐서는 모르는 거라고. 바쁜데 다른 사람의 소설까지 봐주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 따뜻한 호의에 어쩔 줄 몰라 하며 고마워요 언니, 하고 두 번이나 고개까지 숙여가며 감사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런 다음 내가 언니 소설도 궁금해요, 하고 말을 꺼내려고 할 때 앤 공주의 휴대폰이 다시 한 번 울렸다. 이번에도 김 팀장이었다. 앤 공주는 한숨을 푹 쉬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를 향해 입모양으로 잠깐만 전화를 받고 오겠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알겠다는 의미로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님, 저 그렇게는 안 쓴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가게 문 근처에서 통화하던 앤 공주의 목소리가 점차 커졌다.

“이런 식으로 자꾸 요구하시면 저도 곤란합니다.”

상황이 심각해보였다. 늘 나긋나긋하게 말하던 앤 공주가 그토록 격양된 목소리로 대꾸하는 건 처음 봤다. 다른 멤버들도 하나 둘 씩 앤 공주의 통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무슨 통화냐고 나에게 묻는 한 멤버에게 나는 소설이요, 하고 대충 대답하며 앤 공주의 말을 엿듣고 싶어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평소에 고상하고 우아한 사람이 저렇게 정색하고 화를 내니까 더 카리스마 있구나……. 한참을 김 팀장이라는 사람과 실랑이하던 앤 공주는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 돌아왔다. 그런 다음 결연한 어조로 선언했다.

“로마에 가야겠어.”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이탈리아 로마요?”

앤 공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갑자기요?”

“응, 가장 빠른 비행기로 갈 거야. 안 가고선 못 배기겠네.”

앤 공주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종종 그렇게 로마로 훌쩍 떠난다고 했다. 일상에서 벗어나 로마의 거리를 하염없이 거닐다 보면 마음이 평온해진다고. 로마는 물론이거니와 해외여행 자체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해 서른을 넘긴 나이에도 여권조차 발급 받아본 적이 없는 나로선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감성이었다.

“그곳에 가면 그 사람과 보냈던 시간들이 꼭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라.”

그렇게 말하는 앤 공주의 표정은 정말로 아련하고 애틋해서, 나도 모르게 ‘로마의 휴일’의 앤 공주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 뒤 조 브래들리를 떠올리며 꼭 이와 같은 표정을 지었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앤 공주는 다음 날 오전,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단톡방에 인증샷을 올렸다. 제2여객터미널을 알리는 표지판이었다. 우리는 모두 앤 공주의 행동력을 추켜세우며 대리 만족이라도 할 수 있도록 여행 사진을 계속 올려달라고 했다. 앤 공주는 그 뒤로 계속 사진을 하나씩 보냈다. 비행기를 타러 들어가며 한 장, 기내식 찍어둔 것 한 장,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제공항에서 한 장, 테르미니 역으로 가는 공항버스 안에서 한 장. 그런 식으로 사진만 보고 있어도 마치 앤 공주 함께 여행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자주 사진을 찍어서 보냈고, 처음 인천공항 인증샷 때와는 달리 가면 갈수록 사람들의 반응이 느려지고 줄었지만 그래도 앤 공주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문제의 ‘젤라또 사건’이 터졌다. 앤 공주는 여행 셋째 날이라고 말하며 로마의 스페인 계단을 배경으로 찍은 젤라또 사진을 보냈다. 스페인 계단은 스페인 광장과 트리니타 데이 몬티 교회를 이어주는 계단으로, ‘로마의 휴일’에서 머리를 짧게 자른 앤 공주가 젤라또를 먹는 장면으로 유명한 장소였다. 오래전에 본 영화라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 나조차도 스페인 계단 사진을 보자마자 오드리 헵번의 얼굴이 단번에 떠오를 만큼 잘 알려진 곳이었다. (2019년 여름부터 문화재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계단에 앉거나 그곳에서 음식을 먹는 행위가 금지됐지만 당시에는 전부 가능했다!) 모두들 닉네임 값을 한다는 둥, 진짜 앤 공주가 따로 없다는 둥, 반응이 좋았다. 나도 거기에 너무 부러워요! 하고 한 마디 더했다. 그런데 몇 시간 뒤, 조셉이라는 이름의 멤버가 나에게 개인적으로 카톡을 보냈다. 원래 우리는 그 이전까지는 한 번도 개인적으로 연락을 한 적이 없는 사이였다.

―케이, 우리 모임에서 앤 공주랑 제일 친하죠?

―뭐, 그런 편이죠.

―앤 공주 정말 로마 간 거 맞아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조셉은 나에게 캡처 화면 하나를 보냈다. 인스타그램 게시물이었다. 조셉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사람들에게 인스타 해요? 맞팔 해요! 계속 졸랐을 만큼 엄청난 SNS 중독자였다.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에도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실시간으로 스토리를 추가하기도 했고 심지어는 아예 라이브 방송을 하기도 했다. 나도 조셉의 인스타에 들어가서 구경한 적이 있었다. 팔로워 수가 삼천 명이 훨씬 넘었고 그래서 여러 업체로부터 다양한 협찬을 받아 광고성 글을 많이 올리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가장 자주 눈에 보이는 것은 자동차 관련 게시물이었다. 조셉의 자동차는 자동차를 전혀 알지 못하는 내가 딱 봐도 이건 정말로 비싸겠다 싶은, 조셉의 연봉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파란색 외제차였는데(실제로 조셉은 돈을 버는 족족 자동차에 다 쏟아부었기에 가끔은 뒤풀이 자리에서도 배가 고프지 않다는 핑계를 대며 아무 것도 안 먹고 앉아 있기만 했다) 조셉은 하루에도 여러 번 자동차의 외관이 나오도록 사진을 찍은 뒤 인스타에 올렸다. 자동차 애칭은 ‘블루 하와이’. 우리와 만나는 날에도 조셉이 늘 블루 하와이를 끌고 나와서, 우리는 이제 멀리서 봐도 블루 하와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어쨌든 조셉 하면 블루 하와이와 인스타가 곧바로 떠오를 만큼 조셉은 그 두 가지에 하루 종일 과할 만큼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고 그런 조셉의 집착은 젤라또 사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조셉이 나에게 보낸 인스타 캡처 화면이 바로 앤 공주가 단톡방에 올린 젤라또 사진과 똑같았던 것이다. 스페인 계단에서 젤라또를 먹고 사진을 찍는 사람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겠지만 젤라또의 종류, 사진의 구도와 초점, 그리고 색감까지 누가 봐도 그 두 사진은 똑같은 사진이었다.

―앤 언니 인스타 해요?

―아뇨, 그랬으면 내가 케이한테 따로 카톡 안 했죠. 이거 내가 자동차 때문에 팔로잉하는 사람의 인스타예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다른 사람이 앤 공주와 똑같은 사진을 인스타에 올렸다는 거지? 그래서 가만히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조셉이 그사이 또 다른 캡처 화면을 보냈다. 이번엔 여러 장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훑었다. 모두 어디서 많이 본 사진들이었고 자세히 보자 각 사진마다 올린 사람의 아이디가 다 달랐다.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서서히 알 것 같았다. 왜 조셉이 처음에 앤 공주가 정말 로마에 간 게 맞느냐고 물어봤는지 그제야 이해가 됐다. 상황 파악을 했으나 차마 어떤 말을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던 내게 조셉은 말했다. 젤라또 사진을 우연히 발견하고 뭔가 이상하다 싶은 마음에 인스타 해시태그 검색과 구글 검색을 반복하며 다 찾아냈다고, 앤 공주가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자신이 찍은 사진인 척 우리에게 보내고 있다고.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요?

―그러니까요. 대체 왜 그랬을까요?

왜? 왜? 왜?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았다.

문득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엄마도 케이트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나의 상상 속 친구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에게 똑같이 물어보았었다. 도대체 왜 그랬니? 왜 엄마를 속였어?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완벽하게 숨기지는 못했고 그 미세한 떨림을 감지한 나는 엄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발가락만 꼼지락댔다.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나조차도 내가 왜 몇 년 동안 케이트를 실존하는 인물처럼 묘사하고 다녔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냥 어느 순간 내가 만든 모래성에 케이트라는 아이가 살고 있다고 내 마음대로 정했고, 그렇게 정할 당시에는 그것이 상상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에 홀딱 빠져서 나중에는 상상을 진실로 고스란히 믿게 되었다. 그러곤 케이트에 대해 엄마에게 이야기하는 상태에 이르렀던 것이다.

“엄마, 나 오늘은 케이트랑 땅따먹기 했어.”

“케이트? 외국인이야?”

“음, 혼혈이야. 걔네 아빠가 미국인이래.”

나는 엄마가 퇴근하면 엄마 옆에 달라붙어 케이트와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하루는 케이트와 모래성을 만들고 있었는데 몇 명 남자애들이 시비를 걸어 케이트가 그들을 골탕 먹였다고, 또 하루는 케이트의 부모님이 집에 초대해줘서 찾아갔는데 케이트의 아빠가 나까지 목마를 태워줬다고. 그런 식으로 내 이야기 속 케이트는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처럼 생생했다. 동네의 어떤 아이들보다 예쁘고 활발했으며 엄마 아빠 모두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모두 가진 소녀였다. 나는 점점 더 케이트와의 가짜 추억을 만드는 데 빠져들었고, 소심한 내게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안도한 엄마가 가끔 케이트를 집에 데리고 오라고 권할 때면 케이트가 할머니랑 식사를 하러 갔다거나 아빠 고향인 미국에 갔다거나 하는 그때그때마다 다른 핑계를 대며 상황을 모면하곤 했다.

“대답해봐.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거짓말을 한 거니?”

엄마의 재촉에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계속해서 똑같은 두 마디만 반복적으로 되뇌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잘못했어요.”

그 뒤로 나는 케이트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꺼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연히 케이트를 잊은 건 아니었다. 한참이나 세월이 흘러 이미 케이트의 케이보단 카프카의 케이로 남들에게 스스로를 정체화하는데 익숙해져 있을 때에도 나의 상상 속에서 케이트는 여전히 건재했다. 내가 대학에 가지 않고 안정적이지 않은 생활을 하는 동안 케이트는 명문대에 진학했으며 유학도 다녀왔고 대기업에 취직해서 결혼식까지 올렸다. 자랑스러운 나만의 친구 케이트.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그녀를 만들어냈고 그렇게 머릿속으로 그려낸 그녀를 혼자서 꾸준히 동경하고 또 동경했다.

앤 공주가 왜 그렇게까지 체계적으로 거짓말을 했는지 케이트를 떠올려보면 아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고민하다가 조셉에게 물었다.

―조셉, 이거 다른 사람들한테도 말했어요?

―아직요.

―그럼 조금만 더 기다려줘요.

물론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녀를 향한 배신감이 치밀어 올라 견딜 수 없었다. 누구보다 앤 공주를 잘 따랐던 나였기에 더 그랬다. 비로소 석구 씨가 마트에서 만났던 사람이 앤 공주의 본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거짓말인 건지, 진실을 말한 적이 있기는 한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더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그냥 이 사실을 모두에게 곧바로 밝히고 싶은 마음이 치솟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때까지 앤 공주와 함께 한 시간이 떠올라 마음이 약해졌다. 나를 보며 웃던 인자한 얼굴, 닮고 싶던 우아한 미소도 자꾸 눈앞에 아른거렸다. 결국 나는 앤 공주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원래 어떤 좋지 않은 일이든 괜히 일을 크게 벌이기보단 서로 최소한의 상처만 받고 끝내는 편이 훨씬 좋았다. 그래서 조셉에게 기다려달라고 한 것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앤 공주에게 따로 연락했다.

―언니, 지금은 로마의 어디예요?

앤 공주의 답장을 기다리며 나는 바랐다. 차라리 조셉이 찾은 증거를 모두 뒤집을 만한 그런 증거가 있기를. 앤 공주가 지금 로마에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할 그런 사진을 보내주기를. 혹은 아예 앤 공주가 자신의 거짓말을 다 인정하고 사과를 하기를. 어떤 사정이 있어서 철저하게 속여야했다고 솔직하게 용서를 구하기를. 만약 앤 공주가 그렇게 한다면, 조셉은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나만큼은 정말 없었던 일처럼 평생 비밀로 해줄 수 있을 텐데.

앤 공주는 나에게 답장했다.

―응, 나 트레비 분수 근처 레스토랑. 피자에 맥주 한 잔 하고 있어.

―그래요? 사진 좀 보내주세요.

당연히 앤 공주가 보낸 사진은 직접 찍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어려운 음식 사진뿐이었고, 나는 조급해졌다.

―언니 얼굴 나온 여행 사진도 좀 보내주세요.

―나이 들어서 이제 사진 안 찍어.

―에이, 하나도 나이 안 들었어요. 너무 예쁘신데요.

―싫어, 한국 가면 직접 봐.

도저히 안 통했다. 나는 채팅방에 언니, 정말 로마인 거 맞아요? 하고 입력했다가 다시 지웠고, 언니, 지금 로마가 아닌 거예요? 하고 입력했다가 그것 또한 지웠으며, 결국엔 그냥 아무 것도 제대로 물어보지 못한 채 알겠어요, 한국에서 봬요, 하고 보내버렸다. 한참 동안 가만히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그런 다음 나는 컴퓨터를 켰다. 그 앞에 앉아 밤새도록 문예지로 등단한 소설가를 하나하나 다 검색했다. 저명한지 아닌지의 여부를 떠나서 그냥 무작정 모든 문예지를 다 뒤적였고 나중에는 문예지가 아닌 다른 경로로 등단한 소설가들의 정보까지 다 훑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내가 아는 앤 공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앤 공주로 추정되는 인물조차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날이 밝아올 때쯤 나는 검색하는 것을 포기했다.

모임 사람들에게 이걸 말해야하나, 말한다면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고민했는데 사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다음날이 되자 이미 다들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했었으나 참지 못한 조셉이 몇 명의 친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고, 그리고 그것을 들은 사람들은 본인들의 친한 사람들에게 다시 이야기했으며, 그리하여 앤 공주의 이야기가 하룻밤 사이에 우리 모임 사람들에게 싹 다 퍼졌던 것이다. 소문이 퍼지는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심지어 조셉은 나보다 훨씬 집요했다. 예전에 석구 씨가 보낸 사진 속에서 앤 공주의 가슴 부근에 명찰이 있는 것을 발견하여 확대를 한 다음 앤 공주의 본명을 유추하여 알아냈다. 그리고 그 본명을 기반으로 구글링을 해서 신상 정보를 캤다. 조셉의 정보에 따라 종합적으로 결론을 내자면 다음과 같았다. 앤 공주는 소설가도 아니었고, 청담동에 사는 것도 아니었으며, 로마에 간 것도 아니었다. 즉 앤 공주가 우리에게 말했던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다.

―케이 씨도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렇게 사람 깔보고 잘난 척 해놓고선.

곧 앤 공주를 뺀 나머지 사람들의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모두들 앤 공주의 욕을 했고, 나는 그들의 대화를 통해 이번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일각에선 앤 공주를 향한 반발심이 존재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예전에는 괜찮아보였던 행동이 이제 와서 돌이켜봤을 때 괜히 탐탁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앤 공주의 주름마저 우아하게 나이든 소설가의 전형적인 특징처럼 느껴졌던 때가 떠올라 씁쓸했다.

우리는 우리가 모든 진실을 알았다는 것을 앤 공주에게 어떻게 알려야할지 논의했다. 여러 의견이 나왔다. 아예 대놓고 따져서 망신을 주자는 의견도 있었고(SNS나 커뮤니티 등에 올리고 싶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래도 함께 한 세월이 이 년인데 원수가 될 필요는 없으니 조심스럽게 넌지시 말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며, 심지어 그냥 모르는 척하고 장단 맞춰주며 앤 공주를 가지고 놀자는 의견까지 있었다. 어떻게 보면 전부 이런 상황이 생겼다는 사실에 신이 난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쉽게 결론나지 않는 그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윽고 우리가 늘 만나는 일요일이 돌아왔다. 앤 공주도 (실제로는 로마에 가지 않았지만 어쨌든) 우리에게 들려줬던 일정상 모임 전날인 토요일에 귀국한다고 했었기에 분명 참석할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끼리 미리 이야기한대로 앤 공주보다 삼십 분 일찍 움직였다. 다섯 시 반에 하나둘씩 약속장소에 모였고 마지막으로 특유의 소리를 내며 블루 하와이가 도착했다. 다 함께 예약한 식당에 둘러앉아 앤 공주를 기다리는데 그러던 중 한 명이 휴대폰을 보다가 어? 하고 큰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워낙 커서 모두들 반사적으로 소리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앤 공주 카톡 나갔는데요?”

“뭐?”

“언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스무 명 남짓한 멤버들이 다 같이 휴대폰을 꺼내들고 단톡방을 확인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 같이 앤 공주가 정말 인사도 없이 방에서 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혹스러웠다. 아무래도 우리가 진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앤 공주가 눈치 챈 듯 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눈치를 챘을까? 의아하던 차에 석구 씨가 평소의 해맑은 표정과는 다른, 여태 처음 보는 난감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저 때문인 것 같아요.”

석구 씨는 말을 이었다. 앤 공주가 몇 시간 전에 전화로 선물 산 걸 가져가겠다며 오늘 몇 명 참석하느냐고 물었는데, 로마에 진짜 간 것도 아니면서 선물을 사왔다는 게 너무 웃겨서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고. 딱히 다른 말은 안 해서 티가 나지 않았겠구나 생각했다고. 나는 앤 공주가 어떤 의도로 다른 누구도 아닌 석구 씨에게 전화를 했는지 알 것 같았고 석구 씨가 어떤 식으로 웃었는지도 알 것 같았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충분히 예상했으리라 생각했다.

그것이 앤 공주의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앤 공주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번호도 바꾸고 카톡도 탈퇴해서 우리는 도저히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나중에 석구 씨가 다시 한 번 앤 공주를 만났던 마트에 찾아가봤으나 갑작스러운 이사로 일을 그만뒀다는 말만 들었다고 했다. 이제 앤 공주의 본명이 무엇인지도 알기에 이 좁은 나라에서 찾으려고 노력만 한다면 어떻게든 찾을 수 있겠지만, 그래서 몇 명의 사람들은 앤 공주를 한 번 찾아보자는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꺼내기도 했지만, 나는 아무래도 영 내키지 않았고 앞으로도 영원히 내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 또한 우리가 자신을 찾는 걸 절대 원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모두에게 그냥 그녀를 내버려두자고 했다.

사실 나는 앤 공주 개인의 장대한 서사에 관해 제대로 파악하기는커녕 지극히 일부만, 그것도 지극히 얕게 아는 것에 불과해서 그녀가 왜 그렇게 상습적인 거짓말을 일삼았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그녀가 무엇을 갈망하는지는 알 것 같기에, 그녀가 사라진 뒤 어디에 있을지 또한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바로 로마, 로마밖에 없다. 앤 공주가 이십대 초반일 무렵 실제로 로마를 갔는지 안 갔는지, 거기서 조 브래들리 같은 남자를 만났는지 안 만났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앤 공주는 언제나 로마에 있었고 지금도 로마에 있을 것이다. 마치 나의 상상 속에서 케이트가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完)

< 수상소감 > - 황윤정

얼마 전 주차를 한 뒤 차에서 내리려고 문을 열었는데 문득 가까운 곳에서 시선이 느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동작을 멈춘 채 주위를 둘러보았고 곧 어렵지 않게 시선의 주인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고양이였습니다. 하얀 털과 누런 털이 섞인 고양이 한 마리가 화단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저를 빤히 쳐다보며 경계했습니다. 아무래도 볕이 따뜻하게 드는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차에 다시 올라타지도 않고 아예 내리지도 않은 어정쩡한 자세로 고양이를 향해 천천히 눈을 깜빡였습니다. 어디선가 배웠던 대로 고양이에게 눈 키스를 시도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너를 공격하지 않을 거야, 안심해도 좋아, 하고 열심히 신호를 보냈습니다. 한참 동안 그렇게 고양이와 눈빛을 교환했고 마침내 자신감이 생긴 저는 차에서 완전히 내려 문을 닫았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순간 고양이가 펄쩍 뛰어올랐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지키던 자신의 자리를 포기하면서까지 부리나케 뒤로 물러나 저와 거리를 두었습니다.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해서, 야 왜 그래, 다시 여기로 와, 괜찮아, 몇 마디를 건네다가 그냥 천천히 그곳에서 벗어나는 것을 택했습니다. 제가 뒷걸음질을 치며 멀어지자 고양이는 그제야 만족한 듯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아까와 똑같은 자세로 몸을 웅크리고 앉아 가을 햇살을 즐겼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자리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편안한 자리, 누워 있고 싶은 자리, 방해받고 싶지 않은 자리. 모두가 그런 자리 하나쯤은 가지고 있겠지요. 그날 만난 고양이의 자리처럼 물리적인 자리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자리이든 간에 만약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자리를 떠나거나, 놓치거나, 빼앗기는 경우가 생긴다면 대부분은 반드시 기회를 봐서 다시 되찾으려고 애쓸 것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려는 과정 자체가 우리의 인생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소설’이 바로 그런 자리입니다. 저만의 문장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내며 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안정감을 느낍니다. 현실적인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아 고단할 때조차도 소설만은 포기할 수 없었고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습니다. 물론 가끔은 그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야하는 상황이 올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멀리 떠나지 않고 주변만 맴돌며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다시 똑같은 자리로 돌아와 몸을 웅크리고 만족한 고양이처럼 행복해하곤 했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가장 사랑하는 자리를 치열하게 지켜내겠습니다. 그럴 수 있도록 격려해주신 김포문인협회와 심사위원분들께 우선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존경하는 이평재 선생님과 예술서가 문우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또한 누구보다도 제 옆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족들, 친구들, 민수에게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당신들 덕분에 어느덧 제법 쌀쌀한 가을 날씨 속에서도 햇살만큼은 참 따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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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 < 수필 >

          기적소리, 그 멀고 아련한 것들에 대하여

 

 

 김만년/ 동국대문화예술대학원 졸업. 시『月刊文學』등단(2004) 수필

『경남신문신춘문예』당선(2015). 근로자문화예술제 시부문

대통령상. 공무원문예대전 수필부문 최우수상, 시부문 우

수상. 전태일문학상. 독도문예대전 산문부문 최우수상.

 

기차가 통과예령을 울리며 간이역을 지나간다. 역사 앞 수숫대는 구름을 쓸고 묵은 닭들은 하릴없이 구구댄다. 나도 하릴없이 하루를 전세 내어 역사벤치에 앉아있다. 기차는 떠났지만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기적의 공명음은 참 많은 것들을 떠오르게 한다. 어쩌면 저 기차는 지금 백 년째 가을을 지나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가장 오래 달려 온 민족의 마라토너가 아닐까도 싶다. 백여 년 전, 제물포에서 첫 울음을 터트린 후 격동의 한 세기를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 말이다. 기차는 한때 우리 삶의 일부분이었다. 모두가 철길 따라 흘러왔고 철길 따라 흘러갔다. 기적소리에 희로애락을 싣고 고단한 삶의 등고선을 넘어왔다. 그래서 기적소리에는 그 시대의 애환이 짙게 묻어있다.

일제 때의 기적소리는 상실의 비애감을 담고 있다. ‘모갈형’ 증기기관차의 기적소리는 먹이를 찾는 짐승의 울부짖음을 닮았다. 꽤액, 꽥, 괴성을 지르며 검은 연기를 풀어헤치고 미명의 들판을 달렸다. 사람들은 이 거대한 괴물을 보고 환호하면서도 일말 불안해했다. 개화와 침탈이란 양면성을 안고 출발했기 때문이다. 기차는 곧장 수탈의 들판을 달렸다. 산을 잘라먹고 군량미를 적재했다. 부산항으로 서울역으로 보따리 같은 생들을 부리며 캄캄한 노역의 밤을 건넜다. 징용과 유랑의 눈빛들을 싣고 남만주국경을 달리거나 어린소녀들을 사할린이나 남양군도에 부려놓았다.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소녀들은 먼 타국의 골짝에서 망향의 혼魂으로 울기도 했다. 이때는 집으로 돌아가는 노스탤지어의 기적소리는 원경으로 보는 낭만이었다.

전쟁시기의 기적소리는 단장斷腸의 울음처럼 절절했다. 뽀옥, 눈 덮인 전선을 달리는 ‘미카3’의 기적소리는 듣는 이의 애간장을 끓인다. 전장에 울리는 진혼곡처럼 허공을 가르는 기적의 공명음이 목쉰 듯 길고 여리다. 어머니의 마음처럼 여리면서도 강하다. 미카3은 수송전사였다. 피난열차로 남진을 하고 국군을 싣고 포연 자욱한 북녘 땅을 휘몰아쳐갔다. 때론 구출작전에 투입되어 특공대를 싣고 적의 심장부를 탱크처럼 돌진해 가기도했다. 함흥이나 원산에서 몇 량씩의 생이별들을 싣고 전선을 넘을 때면 기적소리는 절규에 가깝다. 그것은 곡진한 삶의 질곡들을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토해낸 폐기음향肺氣音響 같은 것이었다.

뿌우∼, 기적소리가 뱃고동처럼 우렁차다. 증기시대가 가고 디젤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때의 기적소리는 시작을 알리는 진군나팔이었다. 사람들은 상처와 폐허로 얼룩진 삶을 추스르며 가난한 땅에 희망의 씨앗을 뿌렸다. 기차는 파병열차 입영열차 산업열차로 이름을 바꾸어달고 개발의 시대를 달렸다. 뿌뿌, 연신 쇠울음을 토해내며 젊은이들을 공장으로 전선으로 머나먼 메콩강으로 실어 날랐다. 석탄과 시멘트를 싣고 밤을 새워 태백준령을 넘던 기관사들의 눈도 충혈로 들떴다. 외양간의 소들도 동구洞口를 돌아오는 기적소리에 금빛울음으로 화답했다. 비로소 기적소리가 밥이 되고 근육이 되고 생동하는 삶이되기 시작했다.

육중한 기관차가 무쇠심장을 한껏 열어 제치고 쌍나팔을 뿜어댄다. 소리의 음폭이 웅장하고 경쾌하다. 삼천마력터보엔진을 장착한 특대형기관차가 출현한 것이다. 기관차는 어느새 산뜻한 블루 톤으로 옷을 갈아입고 70,80시대를 견인하기 시작했다.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문명의 전리품들을 수송했다. 기차는 패랭이꽃 같은 누이들을 싣고 탈향의 기적을 울리며 보릿고개를 돌아 먼 곳으로 가곤 했다. 공단뒷골목에 값싼 청춘을 부리고 한 땀 한 땀 귀향의 꿈을 박음질 했다. 어머니는 사립문을 서성이며 둥근 추석 달을 앞세우고 돌아올 자식들을 기다렸다. 이때의 기적소리는 어머니에게는 기다림이었고 자식들에게는 어머니에게로 가는 한줄기 그리운 송신음이었다.

80년대의 기적소리에는 나의 애환도 한 자락 묻어있다. 나 역시 배움의 부푼 꿈을 안고 상경열차를 탔다. 성공하라며 손 흔드는 어머니를 철길 끝에 세워두고 고향을 떠났다. 그러나 서울은 삭막했고 성공은 신기루와 같은 것이었다. 나의 방황이 길어질수록 어머니의 시름도 깊어졌다. 80년대 중반을 훌쩍 넘긴 어느 겨울날이었다. 내가 철마인생을 막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때 나는 시한부 생을 받아둔 어머니를 위해 결혼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극심한 통증 속에서도 혼수품들을 일일이 챙기시며 그 화혼의 봄날을 손꼽아 기다리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장남의 성혼을 보지 못한 채 아들을 싣고 올 마지막 밤기차를 기다리다가 돌아가셨다. “서울 큰 아는 요번 기차로는 오냐?” 하시며 누이의 손을 꼭 잡은 채 도릿대를 돌아오는 기적소리의 순서를 헤아리다가 간발의 차로 떠나신 것이다. 어머니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밤기차 안에서 기적도 나처럼 늦게 울었다. 며칠을 내 속에서 이명耳鳴처럼 울었다.

몇 갈피의 세월이 무더기로 넘어갔다. 기차는 칙칙한 흑백시대를 벗어나 발랄한 스마트시대를 달린다. 사람들은 일상을 곧추세우고 직진관성에 가속을 붙인다. 기적소리도 속도에 강등되어 변두리로 밀려났다. 쇠락한 울음을 쿨럭이며 태백이나 정선골짝을 맴돌고 있다. 달캉거리던 삼등열차도 차창가로 흘러가던 보퉁이 같은 군상들도 이제는 긴 망각의 곡선 뒤로 사라졌다. 피난, 상경열차처럼 한 시대의 애환을 상징하던 집단이미지도 눈꽃, 스키, 금빛열차처럼 발랄한 여흥이미지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삼백 키로 속도에 앉아 즉물적 풍경을 즐긴다. 속도가 물질로 환산되는 시대이니 굳이 굽은 길 에둘러갈 필요가 있을까도 싶다. 기적소리 역시 현대인들에겐 추루한 감상으로 손절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마음한편으로 밀려오는 공허감은 무엇 때문일까.

기적소리는 위험을 알리는 기능적 측면 외에 정서적 감응을 함께 동반한다. 이는 기적소리가 우리에게 주는 독특한 공감각적 환기기능 때문이리라. 이 환기의 기표들은 과거로부터오고 부재한 기억들을 호명한다. 까만 밤을 달리던 기차, 멈칫멈칫 손 흔들던 기억, 어느 모퉁이 돌다가 문득 놓쳐버린 얼굴들, 그 소중한 시간들을 떠나 하루하루 녹슬고 마모된 채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오래 전 내 안에서 울던, 시대마다 다른 사연 다른 음색을 달고 전선으로 객지로 분산되던 그 많던 기적소리는 어디로 갔을까. 외진 간이역에 앉아 기적의 공명음에 마음의 유로를 열다보면 더러는 잊었던 시대가 보이고 잊고 산 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뿌웅~, 하행열차가 태백역 쪽으로 달음질친다. 고추를 말리던 노인이 굽은 허리를 편다. 살살이 꽃들이 쉬어가라는 듯 연분홍 손을 흔든다. 여기선 아직 기적소리가 유효한가 보다.

나는 백년의 시간여행에서 돌아와 기적소리의 정서적 지향점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한 시절, 지아비와 자식들을 싣고 폭폭, 눈 내리는 마을 에둘러 가뭇없이 멀어지던 기적소리, 격동의 환절기를 돌아 온 사람이라면 누군들 기적소리에 실려 온 추억 한 장 없을까. 쓰윽, 기적의 여음을 닦으니 오래 된 어머니가 달려 나온다. 그랬을 것이다. 저 기적소리는 세상의 모든 길을 돌아 종내는 그곳으로 돌아갔으리라. 기다림 쪽으로 가고 어머니를 향했으리라. 기적소리가 번성하던 시절, 기차는 역장의 발차전호로 떠나고 기적은 매번 어머니의 손끝에서 울었기에, 어쩌면 파랑 같은 한 시대를 떠밀고 온 힘은 어머니의 손끝에서 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여리면서도 강한, 그 손끝이 있었기에 지금의 그대가 있는 것이라고, 그 힘으로 오늘하루를 견인하는 것이라고, 기적소리는 그 멀고 아련한 잠언들을 일깨우며 내 생의 간이역을 지나간다.

 

< 수상소감 > - 김만년

올 가을은 어느 때 보다도 풍요로웠다. 농부들의 깊어진 수심만큼이나 농산물들이 떨이로 팔려나가고 있다.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대칭되는 극지의 생각들도 한층 풍요로웠다. 만공에 나부끼는 단풍들처럼 노랗거나 붉은 깃발들이 가을거리를 가득 메웠다. 나름의 애국적 단풍들이 두 빛깔로 선명했다. 아! 저 노랗고 붉은 단풍전사들, 좌우의 대칭이 저리 단호하니 내 어정쩡한 생각 한 자락 끼어들 틈이 없다. 우리네 오른 팔과 왼팔은 화이부동(和而不同)형으로 조응하며 잘도 걸어가고 있건만 저 두 빛깔은 언제쯤 한 몸으로 묽어질까. 묽어지기나 할까. 그런 걱정을 조금하는 사이 가을이 지나가고 있었다. 올 가을도 글 쭉정이 몇 알들고 빈들이나 조망하려니 했는데 당선전화가 왔다. 잘 익은 대봉 감 한 개를 배달 받은 듯 달고 기뻤다.

시를 놓고 잠깐 수필로 외도한다는 것이 어느새 십년이 넘은 것 같다. 외도가 아니라 아예 눌러앉았다. 수필의 매력에 푹 빠지다보니 시는 첫사랑처럼 아리고 아련한 것들이 되었다. 꼭 한번은 그 절해고도의 외길로 돌아가고 싶지만 시를 잊고 산 날들이 많았다. 직장 일로 안위하며 나를 벼랑 끝으로 떠밀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고 수필에서 일가를 이루지도 못했다. 아직까지 변변한 작품 집 하나 없으니, 참 어정쩡한 문학이력이다. 그 어정쩡한 보폭을 수상의 힘을 빌려 이 가을엔 조금 더 부지런히 걸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작품을 탈고하면서 힘이 많이 들어갔고 수사(修辭)과잉이 마음에 걸렸다. 또 결미가 앞 단락을 수렴하지 못하고 주관적 해석에 머물지는 않았는가도 싶다. 늘 혼자서 부족을 가늠해 보는 독수공방 글쓰기의 한계이지 싶다. 티가 많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선에 올려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해 올린다. 아울러 김포문학상을 전국공모전으로 바꾸어 이처럼 멋진 글 잔치를 마련해주신 김포문인협회 관계자 분들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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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수상 > - 시

 

                꽃은 뱀을 몰고 온다

 

김미나

서울예술대학교 휴학중

진주가을문예 시 당선(2015)

여수해양문학상 1등(2019)

 

꽃은 뱀을 몰고 온다고 하였다

그때 나무는 아득히 묻힌 땅 속의 긴 폭풍을 가지고 왔다

소용돌이치면서 피어나는 것은

 

꽃이 아니라 꽃살문에 비치는 햇볕

 

흙 속에 허물을 길게 벗어두고 튀어 오르는 뱀을,

우리는 구불거리는 나무라고 불렀는데

가지 끝에 매달린 그늘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데

 

나무는 두근거리는 비늘을 안은 채

대가리로 공기와 흙을 밀어낸다, 그때

꽃은 독을 질질 흘리고

입에선 한 점 봄이 질질 새어나오고

 

툭 불거진 뱀을 보고

그만 발자국은 꽃잎을 밟고 혼비백산,

산안개 자욱했던 봄도

발이 달려있는지

발톱만큼, 개미걸음만큼

꽃이 비늘을 몰고 오듯이

걷고 있었다

꽃을 먹는 것들이 사는 마을

지붕 너머 쓰러진 사람들 두고

불쑥 떠오른 구름인 줄 알고

딴청 피우듯이 새소리를 찔러 넣고 다녔다

 

< 수상소감 > - 김미나

행복하면 불안하고 불행하면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이전에 제 행복을 망치려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들이 저의 주변인까지 힘들게 했습니다. 그 까닭으로 제 행복이 불안하고 힘들었습니다. 내가 행복하면 다시금 나와 내 주변인들이 아파할거라는 생각이 가슴 한편에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스스로가 스스로의 행복을 증오해서 자꾸만 숨어들려고 했습니다. 그럴 때 다시 행복해보자며 끌어내준 나의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제 저는 저의 행복을 가장 중요시 하는 사람이 되었고 더 이상 나의 행복이 불안하지도, 증오스럽지도 않습니다. 제 행복을 보며 “수고했다”라고 진심으로 말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또, 나의 사람들과 행복의 감정을 나누어줄 수 있게 기회를 주신 김포문학상에게 감사합니다.

한창 갈피를 잡지 못했을 때 무작정 여행을 떠났습니다. 뜻밖의 여행에서 저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났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제 시가 되어주었습니다. 제 이야기가 되어준 모든 사물과 자연과 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행복’을 정의 내리고 싶어서 노력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결국 아직까지 ‘행복’의 의미에 대해서 정의 내리지 못했지만 아마 저는 지금 행복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행복에 대해 더 생각해봐야하겠지만 불행이 있기에 행복이 더 잘 보이는 거라고, 불행이 있기에 행복이 더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저는 그 불행에게도 감사하고 “덕분에”라는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이 말을 할 수 있게 된 순간이 너무 행복합니다. 모든 것들과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행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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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수상 > - 시

 

                          봄엔 다 그래요

 

노수옥

충남 공주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한국문인협회 회원

서울시인협회 회원 

 

우리 집 자(尺)들이 조금씩 자랐어요

그만큼 세상의 길이들은 줄었겠지요

의자들은 부풀고요 치마들은 뚱뚱해졌어요

언니들은 뒷굽을 조심해야 해요

평지들이 뒤뚱거리니까요

 

봄엔 다 그래요

할머니는 초록 머리카락이 새로 나고

흔들리던 이빨은 모두

새로운 뿌리가 생겨 단단해졌대요

지친 아지랑이가

노인의 이마에 와서 눕고요

삼각 혹은 길쭉한 씨앗도 모두

동그란 열매를 생각한대요

 

나도 새로운 말투로 말 몇 개를 바꿔야겠어요

말은 관계들 사이를 헐렁하게 풀어놓고요

이름마다 보풀이 일어나요

저녁이 되면 전등이 저벅저벅 걸어와요

조심해, 그건 넘어지는 방법이야

새로운 말투로 알려주고 싶어요

 

봄의 모서리가 줄어들면

태양은 더 둥굴어지고

밤은 착한 마음씨처럼 훈훈해져요

창문은 문틈에 푸른 귀를 매달아요

다 자란 삼각자는 삼각을 낭비하고요

줄자는 길이를 낭비해요

그건 헤픈 것이 아니래요

길이를, 사이를 줄이려는 거래요

봄엔 다 그렇대요

 

< 수상소감 > - 노수옥

끝을 눈여겨보겠습니다

“끝이니까” 라는 말을 “시작이야” 라는 말로 오해하겠습니다

모든 순위(順位)를 존중합니다

아득한 수평선을 만나면 일부러 넘어지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서 처음이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 모든 것이 처음이고 결과입니다

봄에 그랬다면 여름에도 가을에도

다 그럴 것입니다

 

주저하며 응모한 시가

빛나는 순위로 돌아오는 것을 보면

어떻게 긍정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분명 미흡한 시였습니다

심사위원님들의 감사한 선정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런 기쁨일이 일어났겠어요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고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시의 길로 인도해주신 마경덕 선생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문학상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해주신 박선생님

힘이 되어주는 중앙대 잉걸회 문우님들 고맙고 감사합니다

격려를 아끼지 않는 딸 윤정이 아들 영진이네 가정 축복하고

든든한 울타리가 돼 주는 남편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언제나 내편이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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