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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소유가 아닌 나눔이다”□저널응접실/이복형·홍갑표 중남미문화원 원장부부
중남미문화원 이복형·홍갑표 원장부부

 

40여년 일궈낸 국내 박물관미래의 주춧돌, 사회 환원

김포시와 가까운 고양시 덕양구에 고대 아즈텍·마야·잉카문화 유물에서부터 중남미 근·현대 작가들의 회화, 조각, 공예품 3천 여 점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아시아 유일의 중남미 테마 문화예술 공간인 이곳을 한국관광공사는 올해 1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시설 '2018 코리아 유니크 베뉴(2018 KOREA Unique Venue)'에 선정했다. 유니크 베뉴(Unique Venue)는 지역적 특색을 가지며 국제회의, 기업행사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독특한 공간을 의미한다.

이른바 (재)중남미문화원, 이곳은 30년간 중남미지역에서 대사를 지낸 ‘영원한 외교관’ 이복형씨(87·중남미문화원장)와 그의 아내 홍갑표씨(85·중남미문화원설립자)가 전 재산을 들여 평생을 통해 일궈내고 93년 국민들의 재산으로 사회에 환원한 문화공간이다.

이어령 前문화부장관은 중남미문화원에 대해 “내가 새 박물관 법을 만들면서 상상했던 세계는 기껏 한국의 문화를 보존하고 공개한다는 울타리 안의 꿈이었다. 그런데 고대의 마야문명으로부터 오늘의 중남미 문화에 이르기까지 내 눈앞에 펼쳐지는 파노라마는 공간과 시간의 울타리를 훨씬 뛰어넘는 문화의 위대함이요, 소중함의 그 자체다. 더구나 그것을 한 개인의 힘으로 해 낸 것이다.”고 표현했다.

이복형 前대사는 그의 아내이자 중남미문화원이사장인 홍갑표씨에 대해 “30대부터 품었던 꿈은 ‘그저 잘살아보겠다는 것 보다 무언가 큰 뜻을 이뤄보겠다’는데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여든 중반의 나이인데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고 표현했다.

아흔을 바라보며 ‘지금도 태양의 열정’으로 새로운 꿈을 꾸는 이복형부부의 꿈을 따라가 본다.

 

3천여 고대유물 전시 공간

고대 아즈텍, 마야, 잉카의 잃어버린 세계를 시공간 뛰어넘어 우리와 연결해주는 중남미문화원은 무려 40여년 세월에 걸쳐 만들어지면서 우리나라 박물관 미래의 큰 주춧돌이 됐다. 하지만 이곳은 1993년 이복형원장이 멕시코 대사를 끝으로 외교관에서 퇴임할 당시 퇴직금까지 일시불로 받아 건축에 사용하면서 연금도 없는 어려운 상황에서 진행됐다. 그해 재단법인 설립과 함께 방대한 자산을 사회로 떠나보내던 시절, 이들 부부는 97년 개관한 미술관 좁은 지하공간에서 거처했다. 그러다 2011년 종교전시관과 연구소를 건축하면서 10년간의 지하생활을 털고 지상으로 삶의 공간을 옮겼다. 그 과정에서 2001년 조각공원이 만들어졌다. 특히 4년이 걸린 종교관은 여덟 토막으로 컨테이너로 옮겨와 직접 정교하게 조립했다.

 

땀과 열정, 그리고 혼을 담아

4천여 평에 이르는 이 곳의 나무하나 벽돌하나, 문짝, 계단, 길 모두를 자연의 청정함과 예술적 조화를 이루도록 가꾸었고 동선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건축물들은 홍갑표 이사장이 직접 설계를 하고 건축유물을 다시 복원하면서 땀과 열정, 그리고 혼이 담겼다. 이 과정에서 2회에 걸친 전국우수박물관상, 2회의 경기도 우수박물관상, 그리고 2015년 자랑스런 박물관상을 수상했다.

“문화는 나눔이다. 결코 소유가 아니다”는 홍갑표 이사장은 모든 재산의 사회 환원에 대해 “재물에 집착하면 그것이 곧 자기 자신을 구속하는 사슬이 되고 불행의 씨앗이 된다는 삶의 지혜를 실천한 나의 가족들이 매우 자랑스럽다. 앞으로 이 문화원과 함께 영원히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쉬며 남을 것이다”고 했다.

 

큰 위기 ‘꿈’을 위해 극복

오늘의 중남미문화원은 우연치 않게 시작됐다.

1970년 이복형원장이 첫 발령지였던 멕시코 영사를 근무를 마치고 귀국했을 당시, 홍갑표 이사장은 지금의 경기도 고양동에 위치한 부지를 평당 삼백원에 사천평을 구입했다. 1968년 당시 김신조의 청와대 침투사건 등으로 경기북부 지역은 재산가치가 없는 죽은 땅이나 마찬가지였다. 노후에 농장을 하고 싶은 의지하나로 반대를 무릅쓰고 구입한 땅은 돌밭에 불과한 그냥 땅이 아니었다. 운명적으로 이들 부부와 만난 오늘의 중남미문화원의 터전이었다.

이복형원장이 중남미 지역에서 외교관으로서 천직을 다하는 동안 홍갑표 이사장은 벼룩시장에 나온 유물들을 찾아 다녔다. 마야와 아즈텍의 유물, 잉카제국의 유물들은 보는 대로 미친 듯이 수집해서 국내로 수십 번을 오가며 고양동 농장에 모아놓은 열정이 오늘의 중남미문화원의 뿌리가 됐다.

큰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짓기 위해 융통했던 자금이 예상치 못했던 IMF 사태를 맞으면서 엄청난 이자와 원금상환독촉으로 문화원의 존립을 위태롭게 했다. 결국 담로로 삼았던 땅을 헐값에 경매로 넘기며 문화원을 살렸지만 몸은 병들고 마음은 지옥이 되어 한때나마 박물관 건립을 후회한 적도 있었다.

 

아흔을 앞두고 ‘새로운 꿈’

어느 듯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 문화원 운영에 혼신을 다하며 환갑, 칠순, 팔순이 하나씩 무심히 지나갔지만 4천여 평 곳곳에서 살아가는 3천여 점의 유물들은 더욱 빛나고 있다. 그리고 ‘문화는 나눔이다’는 이복형원장 부부의 결과물이자 증거가 됐다.

새벽 3시면 어김없이 눈을 뜨는 홍갑표이사장. 그는 고요한 새벽에 묵상의 시간을 가진지 40년이 됐다. 묵상의 주제는 “내 인생의 목표는 풍성하게 소유하는 데에 있지 않고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복형원장은 매일 아침 6시면 일어나 제일먼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장갑과 작업모를 쓰고 조각공원으로 향한다. ‘영원한 외교관’의 손은 나무손질과 잔디정리, 가지치기, 청소를 하는 동안 부드러움에서 갈퀴처럼 거칠어졌다.

아내 옆에서 자신은 ‘유노동 무임금’이라며 껄껄 웃는 남편과 ‘다시 새로운 꿈을 꾼다’는 아내 홍갑표 이사장의 모습에서 ‘꿈’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만난다.

중남미문화원 입구에 위치한 박물관 전경

곽종규 기자  gyoo4967@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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