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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코 베어오면 “영수증” 준다조한승의 세상사는 이야기

동아일보 안영배 기자가 일본 교토시 히가시야마(東山)구의 옛 대불사터(대불전), 정유재란의 주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신으로 모시는 도요쿠니 신사를 찾았습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약 100m쯤 가면 큰 무덤이 있는데 무덤 앞 입간판에는 ‘이총’ (귀 무덤)이라는 제목 아래 “조선 군민남녀(軍民男女)의 코나 귀를 베어 소금에 절여서 일본에 가지고 들어왔다”고 써 있답니다.
 
이것은 세계전쟁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악랄 왜군의 ‘코베기’ 만행을 증언하는 현장입니다. 사람의 귀는 둘이 있고 코는 하나뿐이니 코를 베어 한사람 죽인 것을 표시하여 바치고, 각기 코를 한 되씩 채운 뒤에야 생포하는 것을 허락한다(난중잡록,간양록)는 것입니다.

이것은 1597년 2월 조선재침 정유재란을 명령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해 6월15일 내린 명령입니다.

왜병들은 2월에 조선에 재 출병한 이후 민간인들을 납치해 노예로 파는 등 ‘사람장사’에 열을 올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히데요시가 파견한 검사관은 소금에 절인 코의 숫자를 확인하고 ‘청취장’을 써줬습니다. 이 청취장은 가문 대대로 이어져 내려 왔답니다.
 
왜군장수들 사이에선 코 베기 실적경쟁까지 벌어졌답니다. 왜군들은 전사자뿐 아니라 살아있는 부녀자와 어린아이들의 코까지 잘라갔답니다.

코베기의 현장을 직접 목격한 난중잡록의 저자 조경남은 “왜놈들은 조선 사람만 보면 죽이든 안 죽이든 코를 베었으므로 그 뒤 수십 년간 조선의 길에서는 코 없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유재란을 겪은 이수광은 그의 저서 ‘지붕유설’에서 “조선 사람들 가운데 코는 베어 없어졌어도 목숨을 건져 죄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때 왜군들이 얼마나 많은 코를 베어갔는지 정확한 집계는 없으나 일본 측 기록인 ‘조선물어’(朝鮮物語)에는 정유재란 당시 조선사람 코 18만5,738개, 명나라군사 코 2만9014개 등 모두 21만4,752개의 코가 일본으로 보내졌다고 기록하고 있답니다.

히데요시가 죽은 후 일본인들은 코 무덤 즉 비총(鼻塚)을 귀 무덤(耳塚) 으로 둔갑시켰다고 합니다. 일본의 만행은 코 무덤과 귀 무덤뿐 아닙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한 못된 짓들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지금도 우리나라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국력을 길러 대비해야 합니다.

조한승  webmaster@gimpoj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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